북한대화 불가 ㅡ 북한정책 도박 판단.
# 북한은 남한과 통일 불가 판단.1인 1당 독재 살인독살 체제
# 남방의 북방접근은 ...체육 문화 교류는 가능하나 정치 군사 와교는 상호 성격. 본질적으로 불가 판단..반대하자... 당시 육군 보언사령부에서 3명이 LA에 파견, 부동산업자 하기환과 짜고 미주통일신문을 파산..위장파산 시켜...전임 대통령의 정부 지원책을 찢어 버렸다. 증인 ㅡ 1992년 주마대사관 파견 황광덕 육군 소장이 나에게 전화로 사과. 또 하기환 개인 CPA가 제보 등 위장파산 서류에서 확인. 지금도 관련 중거물 있다.
(당시 나는 FBI 신고. 조사.. 나는 재판 제기. 그러나 사기꾼 판사가 판결사기를 쳤다. 그 전후 부터 법원 내 일부 극소수 판사들이 <사기판결>한다는 사실확인, 경악..폭로)ㅡ 배부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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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 장세동 부장님, 추가 설명이 필요 해서. 배 기자가 1988년 부터 비참한 인생. 언론행로를 자초한 이유가..
ㅡ 즉 5공 시대 마감 후, 바톤 첸지를 한 장세동 대통령 아닌 노태우 대통령 안기부는, 곧바로 La 파견 영사들이 나를 불러 식당(용수산 식당)에서 만나 새 정부의 대북정책 <한민족 공동채 통알방안> (나중에 공개 발표 했으나)에 따라 "이젠 북한에 가서..북한 사람도 만나고..대화.. 하라"고 코치 했어요.
그 때 제가 큰 실수 ? 했어요. "오케이...알았어요," 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저는 ," 북한과 대화 ? ㅎㅎ 안됩니다. ,시기상조에요. 나는 북한에 안가요..,"
끝.ㅡㅡㅡ
그 때 부터 2019년 9월 30일 오늘까지 생고생.
그 원인은
1. 나는 다년간 북한체제 공부 겸 그 속내...실체를 집중 파악 하면서..
2. 북한애선 외교관들 끼지 LA에 와서 나를 북한에 가자고 집요하게 접촉... 그러나 1983년. 4년 판문점에서 남북경제 회담 등 2번 취재하면서 북한실체 파악 첫 단계에서 끝이 났어요.
3. 북한 대표들, 수행자들 특히 기자들 20여명을 상대로 접촉, 그들의 눈빛 표정 언어 숨소리 진실성 여부 또 남한 자본주의와의 협력교류 가능성 체크 ..
결론은 상호 동질성 회복 불가ㅡ상호 이질감 무서울 정도로 달라 화합, 공동체 구성들이 근본적으로 불가 판단.
즉, 북한의 경제가 최소한 남한 경제력을 따라 잡을 때 남북대화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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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부터 저는 북한에 대해선 기대 기능성을 접고 불신 접촉 불필요성이 팽배, 북한미련을 포기 했습니다.
그래서,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의 접근 자체를 거절..
고로 나는 거지꼴이 되었음. 계속 ?
배기자에게 지급된 격려그 하사금 공작비 해외언론사홍보비 배달사고 난것을 이 남로당이 최초로 폭로해서 난리부르스 났었지
미주통일신문에게 지급된 액수가 비공식 통계로는 도합 500만 달러가량
됐다는 내부보고서를 보고 경악했지
이 남로당이 심어놓은 세작들이 보내온 정보야
5공 때 장세동 동무가 가장 많은 액수를 결재했어
물론 잰도깡 다이토료께서 후하게 인심을 쓴거지
배기자가 장세동 동무의 은혜는 알고있어서 다행이야
천국엔 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