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3:16> <Nahum 1:7>
발행인 (Publisher/Editor) 배 부 전, Simon (Bu Jun) Bae, Tel. (213) 305-7100
신문창간일자 1982년 2월 11일, 인터넷미디어창간 1999년, TV방송 개국 2003년 11월
3010 Wilshire Blvd. P.O. Box 1000 Los Angeles, CA 90010 U.S.A.
미국 LA 카운티 등록 1982년 2월 11일 등록, 이메일: simon@unity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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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Unity Press founded Feb. 11.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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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ing KUP-TV since Nov.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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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냉전해체,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반도, 30년 간 그 현
장을 목격한 '기자의 증언'

(글 분량이 많으니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해도 가능하며, 필자가 지금 정신적으로 매
우 피곤한 상태라서 충분한 글을 작성하지 못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공모자 : 미국 LA거주 [미주통일전략연구소 뉴스 미디어 그룹] 대표
배부전(미국명 : SIMON B. BAE). 1972년 3월 한국 언론계 투신(시사통신 등
약 10여개 주간지 월간지 편집장 역임 등), 1980년 해직 언론인, 1981년 미국 LA
도미, 1982년 2월 11일 반공신문 [재미한국인] 주간지 창간했고 그 1년 후 1983
년 [미주통일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변경했으며1999년부터 [인터넷 미주통일신문]
으로 전환,(www.unitypress.com. 한글 주소는 미주통일신문)했으며

2003년 10월부터 2004년 4월 까지는 중남미, 캐나다 등 지역에서도 시청하는 위
성 TV + LA지역 공중파 TV18 등 3개 TV 채널을 통해 매주 1시간 혹은 30분
씩 [배부전 기자의 뉴스 쇼]를 하던 중

2010년 7월 현재는 자금이 없어서 공중파 방송들을 운영하지 못하고 타임워너 케
이블 9개 채널을 통해 미국 LA 전 지역 및 42개 위성 도시에서 미국인들도 시청
하는 TV방송으로 발전 운영 중. 교민 시청자는 30만 명 이상으로 판단.

아래 원고 중 중요한 기관 이름들은 생략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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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두 PROLOGUE >


특히 본 공모자는,

1970년대 남북한 냉전상황 (박정희 대통령 시대)
1980년대 남북한 냉전상황 (전두환 대통령 시대)
1990년대 냉전해체 - 지공상황 (노태우-김영삼 시대)
2000년대 민족화해 협력 추진상황 (김대중-노무현 시대)
2010년 중반기 대북 상생 공존상황 (이명박 대통령 시대)

위와 같은 상기 5대 정권 기간 중에 취재기자의 입장에서 소위 남북한 대결 경쟁 및 화
해협력을 추진하려 했던 우리 한국정부의 눈물겨운 관련 상황들을 직, 간접으로 목격 체험
했습니다.

더욱이 나는 1982년부터 2010년 오늘까지 판문점과 미국 이민 동포들의 삶의 현장에서 특
히 북한 공작원들의 북한방문 회유, 북한정권 찬양선동 신문발행 요청거절에 따른 자동차
납치 살해미수 등을 실체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 동서 냉전해체가 되었음에도 유독 한반도만이 2010년 7월 현재까지 냉전해
체 이전의 극한상황의 재연, 그 후유증을 앓고 있어 더욱 착잡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
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한반도의 비핵화, 그리고 [자유 민주 평화]통일을
달성하려고 꾸준히 대화와 교류협력을 시도했고 또 오늘 그 연장선장에 있는 현직 이명박
대통령의 원칙 있는 대북 상호주의가 최상의 대북정책이라는 사실들을 재확인 했기 때문에,
오늘 필자는 위 같은 바탕에서 5단계 논 픽션으로 분류했고 이는 모두 100% 사실적 증언
들임을 약속하고 오늘 요약, 기술한 것입니다.



(공모 주제는 ... 편집자들이 최종 결정을 하시고... 공모자는 [아, 미국 통분의 로스앤젤레
스 !] 혹은 [냉전해체의 후유증을 앓는 한반도] - 그 후유증을 목격 증언하는 40년 경력의
기자- 라는 주제를 선택하고자 합니다.

또 다른 부제가 필요하다면 [미국에서 기자가 확인한 미확인 남북분단
의 현주소, 그 북한체제 자체의 악성코드 발견]으로 정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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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시작된 기자의 '운명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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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오전 9시 경, 필자는(나는) 사진기자와 함께 포니 승용차를 몰고 제2 한강
교를 진입하면서 라디오 스윗치를 켜고 막 뉴스를 듣자 가벼운 장송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아니 ? 왜 이래 ? ??? 이상한데 ?...} 곧 이어 남자 아나운서가 {어제 밤 박정
희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궁정동 ...}

그 후 거센 회오리바람이 정국을 강타, 전국 계엄 확대, 김재규 정보부장 체포, 칼바람을 불
어 일으킬 듯한 표정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등장, 12. 12사태 하극상 발생, 언론통폐합,
5. 18 광주사태 까지 발생했었다.

이것은 곧 1972년 7월 4일 소위 [7.4 남북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따라서 남북한 최고
책임자의 명을 받은 정보기관 총책들이 남북한 교차방문을 했고 남북적십자 회담까지 열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대화가 진행되었으나 북한의 위장평화 전략이 박정희 대통령의 강
력한 반공보수 체제 및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중요시하는 헌법 때문에, 북한정권은 1년
만에 북남대화의 한계점이 드러났고 그 와중에 북한의 남침용 땅굴들이 발견되는 등 사태로
인해 불발된 남북관계는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남북정상회담들은 일장춘몽으로
끝는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1980년 봄, 전두환 군부의 정국장악 상황, {여기는 계엄사령부 언론검열반이 있는 서울 시
청 공보관실... '강서 뉴스'(당시 나는 서울 강서구 지역에서 발행 하던 월간 뉴스지 발행인)
배부전(나의 이름)은 즉시 공보관실로 오라 !}는 전화를 받았다. 그 때 강서구청에서도 같은
전화가 왔다.

오후 3시경 서울 시청 본관 입구. 다시 입구로 들어 가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카키색 군복
을 입은 몇몇 군인들이 기자의 눈에 클로즈 업 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 전에 이어 두 번
째 계엄사령부 언론검열반이 있는 서울 시청에 들어섰다.

"무슨 일이지 ? .... 혹시 강제폐간 ? 몇몇 일간지들도 폐간되었고 통폐합을 했으니...내가
잘못한 게 있나 ?" 내가 공보관실로 들어서자 중년의 공보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현역 군인이 아닌 시청 공보관이었다.

{여기 앉아요.. 여기... 이름은 배부전... 현재 K대학원 국제정치학과 재학 중... 월간지는 몇
부 찍었어요 ? 모두 회수하도록.. 그래서 봐 주는 것이니...여기 서명 해요 ! (강서 뉴스)는
오늘부로 폐간시킨다. 계엄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항하지 말고) 서명부터 해요 !} 공
보관은 약간 고압적인 자세, 어조였다.

얼마 전 유신헌법 공표 직후 전개된 또 하나의 상습적인 계엄 상황에서 나는 처음으로 계엄
사 언론 검열 반에 찾아 온 경험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카키색 군복을 입고 땀 냄새나는
군화를 신은 군인들 앞에 앉아서 약 1시간 이상 편집마감이 된 원고를 들어다 보여 주면서
소위 언론의 자유를 정면에서 침해받는 경험을 최초로 했던 것.

그 때 담당 검열군인이 보도해서는 안 될 문장에 대해 빨강 색펜으로 줄을 그었다. {이건
나가면 안돼 !...} 그 때 나는 그 검열군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이런 넋두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헌법에서 공부한 언론의 자유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건 언론
침핸데 ...개쌔끼... 뭘 안다고 지워 ? 그런 기사를 삭제하다니... 좆도 모르는 게... "


어쨌든 나는 오늘 두 번째로 서울 시청 공보관실에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언론을 못하
게 방해하는 반언론 세력 앞에 앉아있는 것만은 명백한 현실 - .

{ ???? ... 폐간이유가 뭡니까 ?} 나는 겁 없이 공보관에게 물었다. 나의 질문에 그는 기다
렸다는 듯이 지난주에 내가 발간 배포했던 '강서 뉴스' 지를 서랍에서 꺼내 들고 책상 위에
펼치면서 첫 장에 내가 쓴 사설 <민주주의의 허상과 실상>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서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본다. 살벌해 지기 시작하는 분위기.

어쨌든 그 사설 내용은 지난 해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군부의 등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던
것. 그것이 오늘 강제폐간 사유. 그 때 기자가 사인을 하지 않고 버티자 공보관은 { ??? 계
엄사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서명 안하면 계엄사에 데려간다. 그 땐 난 몰라 ! }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하얀 A4 용지에 [.... 배포한 3천부를 회수하고... 폐간한다...]는 자필
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자진 폐간서에 사인을 마치자 그는 {이젠 가세요 !} 공보관
은 나에게 '석방'을 명했다.


그 때, 나는 1시간 전에 계단을 밟고 올라왔던 서울 시청 정문 계단을 다시 밟고 내려오면
서 "자유 ? 구속 ? 인신구속 ?.." 용어들을 아가리에 집어넣고 미친듯이 마구 씹으면서 신
체의 자유, 그 해방의 맛에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순간 나는 아랫도리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그 후, 나는 실직자가 되었다. 호주머니에 남은 돈은 300만 원 정도였다. "고시공부는 이미
틀렸고, 시골로 내려 가 ? ..서울신문 사회부 특채, 안기부 대북 방송실 특채(동료 기자가
나를 따돌리고 자신이 편집자라고 속여 특채, 그러나 그는 두 달도 못돼 퇴출 당했고) 불
발에 이어 MBC- TV 특채도 물 건너가나. (얼마 전 모 유력인사가 나를 데리고 MBC 임
택근 전무실(?)을 직접 방문, 인사를 드렸다. "여기 기사를 잘 쓰는 배부전 기자를 소개합니
다.." 라고 했었다")

어쨌든 그 때 5.18 광주사태가 터진 후 명동 등 길거리에는 해직 언론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아스팔트 위에서 하이칼라들이 휘청거리는 꼴을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실직
자, 해직 언론인들 임이 쉽게 식별 되었으니.

그 때 나는 실직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선배가 맡은 일본 반공세력들이 만드는 반공신문
'일본 승통신문' 서울 지사의 특파원이 되었다. {배 기자, 니 미국에 가라마 ! 너는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미국에 가서 기사를 써야지 여기선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간 죽겠다. 군부가
정권을 오래 잡을 것 같다....}동료 송준헌 기자가 나에게 미국 바람을 일으켰다.


"미국 ? 미국이 어딘데 ? 비행기를 타면 멀리 갈 텐데..."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바라보면서
미국에로의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내키지 않은 미국 행에 고민 연속. 또 그 무렵 당시 건국
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중인 나의 고향 후배를 만났더니 {형님이 미국에 간다고요 ? 그러면
점을 한 번 봅시다, 좋은지...}그를 따라 간 곳이 옛날 서울대학교 옆 동숭동 로타리에 있는
높은 빌딩 4층.

나는 그 때 점장이 앞에 앉았으나 창 넘어 보이는 서울대학교 법정대학 캠퍼스를 바라보면서
그 때 갑자기 눈물이 날 뻔 했었다. 1966년 아버지의 백화점 사업(동대문 시장 같은 규모)이
실패하고 집까지 은행에 차압 당한 후 대학 진학을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단신 서울로 올라
와 서울 대학교 당시 법정대학장 유기천 학장 집을 직접 찾아 가 청강생을 신청, 겨우 4개월
간 수재들이 모인 서울 법대에서 공부를 했으나 생활비 등이 어려워 중도 하차 했던 일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어쨌든 그 때 만난 50대 남자 점쟁이는 나의 사주를 보더니 "미국에 가세요, 좋습니
다.."라고 점패를 턱 내 놓았다. "미국 가면 좋다고 ? 내가... 지가 뭘 안다고.."피식 웃었다.

어쨌든 "미국가면 좋다"던 그 점쟁이 말을 믿고(?) 미국에 갔던 오늘의 기자는 그 후 30년
간 미국산 거지들도 경험하지 못한 호된 고생을 했고 빨갱이들에게 유인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미친 놈 기자"라는 소리를 수천 번 들었고 또 당시 전두환 대통령, 장세동 부장들,
안기부 대북 국내 정보 팀들과 심지어 LA에 파견된 안기부 요원들 까지 북한 김일성 부자
사진들을 마구 보도하고 "북한과 대화하라.. 북한도 정권으로 이미 확립되었다"는 등등 당
시로서는 미친 기자가 아닌 한 그 같은 기사를 쓸 수 없었는데도 내가 만드는 신문이기 때
문에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공격적인 북한 뉴스들을 보도, 폭로하자 그들도 헷갈려 "배부전
기자 ? 이 놈이 누구고 ? 북한선전을 해 ? 통일교와 연관이 있나 ? 어떻게 그런 신문을 혼
자서 해 ? ....빨갱이가 될 기자구나... 웃기는 놈이 아이가 ? " 할 정도의 인물평을 받았고
심지어 1984년 경 LA 유력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 중 하나는 {FBI에서도 배부전 기자가 빨
갱이가 될 것 같다}는 말을 직접 알려 주었다. 이 같은 기막힌 기록들을 남길 줄 그 점쟁이
와 하늘이 알았을까. 기가 찰 30년간의 작은 생명을 건 반공, 지공, 화해협력의 한반도 실
제 상황들을 몸소 경험했으니 말이다. 수신제가도 못하고....




--- 1980년 전두환 군부 등장,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미국으로의 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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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결국 운명적인 인생 유도에 걸려 대한 항공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 했다.
1981년 7월이었던가. 도착한 지역은 천사의 도시라는 로스앤젤레스 - .


그 때, 나는 문제의 로스앤젤레스가 아주 지겹고 무척 무섭고 살벌하고, 일본 조총련 행동
대원들로부터 권총으로 위협을 받는 등 각종 테러를 당하고, 미인계 걸려 납치를 당하고,
"북한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총련들로부터 자동차 테러를 당하고, 우군 보수 친구들에
게 배신을 당하고, 빚쟁이에 몰려 신음할 줄 모르고, 만나는 여자들 마다 "돈 있어요 ? 전
두환이 앞잡인데 돈이 없을 라구.." 라는 소리를 듣고 이혼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또 최
소한 일본 거류민단처럼 반공 언론일지라도 생존이 어려워 2010년 7월 까지 '고난의 행군'
이 이어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미국 동부 뉴욕 옆 동네
뉴저지 행을 포기하고 LA로 기수를 돌려 정착했다. 이게 탈 이었다 ?


미국 LA 정착 한 달 만에 손에 잡힌 일간지 신문이 아닌 주간지 신문 하나. 이놈의 신문
논조가 서울에서 구경도 못한 친북적인 신문 같아 눈길을 끌었다. 일단은. 그 때가 1981년
10월이었던가. 집으로 무료 배포되는 [코리안 스트릿 저널지] 주간지를 만난다. 이것이 그
후 내가 2010년 까지 30년 간 통탄, 통한의 미국생활이 될 줄 모르고 취업차 찾아 간 문제
의 주간지 - . ("미국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의 신분 등에 따라 미국에 온 사람의 운명
이 바뀐다"는 속설이 있었듯)

{한국서 기자를 했다구요 ? 해직 언론인 ... 강제 폐간되고... 전두환 군사정부...}주간지 사
장(조재길 씨. 그는 지금 LA 근교 도시 쎄리토스 시 시장), 편집국장 노길남(지금은 민족통
신 대표), 두 사람이 나를 앞에 두고 그들은 내가 신기한 놈처럼 생겼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또 그들은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가 사형집행을 당하
지 않고 미국에 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 라고 묻기도 했다.

{내일부터 근무하세요. 우선 팟 타임으로(오전 근무만) 하세요...} 나는 미국에서 최초이며
마지막 회사입사를 하는 면접시험에 통과되는 행운을 맞았다.

입사 일주일만인가, 그 때 내가 편집한 내용(사진 식자체)을 살펴보던 중 경악할 만한 기
사를 발견했다. 그 당시는 그 기사제목이 가히 경악 수준이었다. 지금은 북한방문도 하지만.
즉, [중국 관광단 모집] - .

나는 편집된 레이아웃을 들고 편집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중국 관광단 모집을 해요 ? 이런
것은 안 되지요 !...어떻게 이런 기사를 써요 ?...}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노길남 편집장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 후 그는 내가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 업무를 과중 시켰다.




-- 한국서 배운 냉전사고 레드 콤플렉스가 강해 미국 판 친북좌파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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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72년 7월 4일 직전 당시 '7.4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락 뉴스를 들으면서 서울서
8년 간 밑바닥 언론사 약 10개사를 섭렵하면서 잔뼈를 키운 나의 화려한 경력을 몰라 ? 특
히 내가 월남 패망 전 후 주한 월남 특명대사 '팜 수완 치우' 현역 육군 대장을 비롯하여,
일본 대사 우시로쿠, 중국 대사(이름이 장 ? 기억이 안 난다), 토쵸케토 말레지아 대사들을
연쇄 인터뷰하면서 우리의(한국의) 국가안보의 중대성 등을 배웠고, 또 정보요원이 숨어서
지켜보는 방안에서 만났던 "청와대를 까러 왔다"던 김신조 남파 특공대원, 핵무기를 연구하
는 연구소 소장을 취재 갔다가 사진 촬영금지 구역에서 사진을 찍다가 현장 파견 정보원에
게 적발되어 연행되면서도 기자는 기자 신분을 내 세우고 거세게 항의를 했던 성질 더러운
수습기자가 아니었던가.

또,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헙법을 반대한 죄로 자연인이 된 당시 민주공화당 총재 정구영,
또 윤치영 서울시장들을 극비로 만나 인터뷰를 했고 일부 기사를 잘못 써 김형욱 정보기관
으로부터 요시찰 기자로 낙인이 찍힌 스토리를 간직한 기자가 아닌가.

특히 나는 그 기간 중에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한반도 운명들을 배우기 시작했던 노하우가
있는 반공기자가 되었던 것. 비록 나는 1950년 6.25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나
는 그 무렵 남산 밑에 있는 반공연맹 센타 지하실에서 손을 벌벌 떨면서 북한 로동신문 등
북한 신문철들을 만지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 노동신문이 아니고 로동신문 ? 이게
빨갱이들 ?... 6.25 남침을 했던 괴뢰들...." 눈에 익지 않은 북한 활자체에 넋이 나갔던 그
때 또 하나의 충격적인 운명의 만남을 경험하던 기자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에서 이상한 동포들이 주간지를 만든다면서 공산국가 관광단을 모집
한다니 ....그래서 천하의 배부전 기자에게 공산당을 싫어하면 회사를 그만 두라고 ? 그래,
나 사표를 내고 나간다. X 할 놈들아, 나간다, 나가 ! 나도 니 놈들처럼 신문창간을 하려고
미국에 왔지, 미국이 좋아서 온 줄 알어 ? "

나는 열흘 정도 일한 보수 200여 달러를 사장 부인으로부터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부터 나는 이를 갈면서 [재미 한국인] 주간지를 창간한다고 안내장을 만들어 타운에 뿌
리기 시작했다. 신문창간 안내장이 동네에 뿌려지자 교민사회에서 {어 ? 누구 야 ? 미친 놈
이 또 왔나 ? ... 배부전이 ? 한국서 뭘 했대 ?.... }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나중엔 창
간호 신문을 받아 본 외교관 왈, {그 사람은 미국 LA 동서남북도 모르는 사람이야...} (당시
한국 총영사관에 온 총영사 박민수의 코멘트)

그런 와중에 {뭣 ? 네가 신문을 한다고 ? 미국에 왔으면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신문을
한다. 그것도 반공신문을 ? 너 미친 놈이 아이가 ?? 지난 해 전두환 대통령이 왔다가
몰매를 맞을 뻔 했는데... } 친지들이 놀라 기절초풍,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 반정부, 반체제 교민들이 LA 한인사회를 장악 친정부 활동 제한받는 상황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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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누구의 잔소리도 듣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신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도 돈이 한 푼 없었다. 월부 자동차를 타던 중 찻값을 못내
차를 뺏기기도 했다. 아파트 월세가 밀리고 퇴거명령을 받으면서 신문인쇄를 했다. 아파트
월세를 주지 않고 그 돈으로 인쇄비를 주는 때가 많았다. 자동차 안에서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혼자서 신문을 만들고 혼자서 신문을 배달하고 광고수주를 하고, 광고비 수금도 했다.
신문은 한국 등 지역으로 우송하는 일도 내가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는
기자"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우연히 만난 LA한국 영사관 파견 영사 출신 한 사람(올림픽가 한인 우체국 옆에서
'산호 미장원' 여자 주인 남편. 이들 부부는 나중에 잠자다가 집에서 화재가 발생, 불에 타
죽었다)이 나에게 {... 그런 신문(반공지)을 하지 마세요... 어려워요. 여기선... 나도 북한문
제를 취급하다가 영사관에서 사표를 냈어요...}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분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당신의 실수였지, 나에겐 그런 말이
통하지 않아... " 외면했다. 또 그 무렵 운명적으로 LA에 온 안기부 파견영사들을 만난 후
정보기관에서 유명하다는 일본 관상가를 LA.까지 데려와 명동식당에서 안기부 요원과 같이
식사를 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는 그 점쟁이를 정부당국에서 보내 "배부전 기자의 관상
을 보라"고 했던 것. 즉, 배신할 놈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라는 것.

그래서 그랬는지 그 점쟁이는 그 때 식사를 하면서 계속 기자가 앉은 자리 앞 정면에서 기
자의 면상에 화살을 꽂아놓고 흡사 뱀 눈동자 처럼 눈알을 돌리면서 무섭게 나를 째려보고
또 돌려보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그 점쟁이가 "그 놈, 기자는 고집불통 이야... "라고 보고(?)했다는 비하
인드 스토리를 간접으로 들었다. 그 일이 벌써 27년 전인데... 오늘도 그 때의 식사 자리가
주마등 처럼 기자의 눈앞을 스쳐간다.



--- 혼자서 미국 LA서 만난 동족 친북반미 좌파들과의 전쟁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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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2월 11일 창간호 5천 부 인쇄. 옆집 할머니에게 300달러를 빌려 인쇄. 다시 전두
환 대통령 얼굴을 신문 톱 뉴스로 다루면서 반공지 색깔을 내는 신문 2호 제작, 3호 신문제
작을 했다. 그 신문이 사실상 미국 교민사회에서 최초의 반공신문이었다.

그 직전 1978년 경 이곳 한 교민 인사가 박정희 정부를 지지하는 소위 친한파 신문을 만들
다가 두 달도 못 돼 친북좌파들에게 못 이겨 신문발행을 중단했다고. 그 때 그들은 언론사
사주에게 "너, 그 신문사를 집어치우지 않으면 자동차를 폭파 시킬거다 ! ..."라고 협박을 예
사로 했으며 집에서 딸이 전화를 받으면 원색적인 쌍욕을 해 대는 바람에 도저히 친한파 신
문을 발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당시 교회 장로 이우철 이라는 분이 나를 식당에서 만나 한다는 말씀이{내가 '재미
한국인' 신문사의 회장이 될까 ? 내가 인쇄비를 댈테니... }그는 웨스턴 + 피코 앞에서 뷰
익 자동차 세일즈 팀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회장이 되었다고 신문 제호 옆에 회장 이름을 넣었더니 예상하지 못한(?) 사태
가 발생했다. 소위 소문만 들었던 미국산 좌파 친북반미 세력들의 첫 공격이 시작되었다.
회장이라는 분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와 자기 사무실로 오란다. 내가 회장 사무실에 막 도
착 하자마자 그는 느닷없이 전화 송수기를 나의 귀에 재빨리 들이댄다. "이게 무시기 수작
인가" 어리둥절한 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송수기를 타고 내 귀에 들어 온 욕설,

{야이 새끼들아, 니들 전두환이 앞잡이지 ? 이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광주 양민 학살범
전두환이를 선전 해 !?!...이 새끼들 까불면 죽어 ! 죽여 ! ...}(여기서 참조할 것은, 이들이
모두 친북좌파가 아닌 순수한 민주화 운동가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는 그 전후
반정부 & 친북세력을 구분하는데 많은 혼란이 있었다)


여하튼 이 때, 나는 "아, 여기가 소문대로구나. 빨갱이들이 많구나.... " 입 안이 바싹 말랐
다. 그 때 회장은 {배 기자, 나 회장 안할래. 이러다간 사업에 지장이 있겠어.... 나 이름을
신문에서 빼요...} 좌파들 바람에 그만 공짜 같은 인쇄비가 날아갔다.



--- 북한 공작원들의 교민포섭 활동, 남북 이산가족 문제들이 미국서 첫 확인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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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혹독한 냉전시대가 진행되는 1980년대 중반인 1982년부터 1983, 4, 5, 6년 사이
LA 코리아타운 엽전 동네에서는 한 맺힌 배부전 기자가 만든 반공신문 [재미 한국인]을 받
아 본 교민들이 {우리 하숙집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는데... 김일
성 장군노래를 부르고... 로동신문이 아파트 현관에 산더미처럼 놓여 있어요 ! ... 나는 영
주권이 없이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마켓에서 일을 하는데 어느 목사가 찾아와서 "너, 영주
권 없지 ? 나하고 같이 북한에 가지 않으면 이민국에 고발 하겠어 ! " 협박하는 목사가 있
으니 기자 님 날 좀 살려 주세요 ! ....의사들이 중심이 된 친북파들이 매월 만나는 월례회가
있다... 이산가족들의 모임도 있다.. 빨갱이들의 전문 교회가 있다...양은식 교수, 홍동근 목
사가 빨갱이 단체 보스 다. 그들은 동부에 있는 친북한 학자들과 연대, 미주지역에서 통일
전선을 획책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북한 출신이다. 그들은 북한에 가족들이 있어서 친북활
동을 한다. 그들이 미국 지역 청년 학생 이민 2세들을 공산주의 이론을 가르치고 세뇌시키
고 있다. 친북한 학자, 언론인들이 모여 {민족은 하나, 조국도 하나, 원 코리아, 백두에서 한
라까지, 유엔 동시 가입 반대, 분리 유엔 가입, 주한미군 철수, 양심수 석방, 구속 양심수에
게 담요 보내기 운동, 군부독재 타도, 살인마 전두환 죽여라, 전두환을 찢어 죽여라...

나이 60이 넘은 군 출신 노인들이 '한인 우체국 주인이 북한 선전용 김일성 소련 방문기 등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주고 있다, 배 기자는 뭘 하나 ?'.... 이 때 우체국을 운영하는 50대
남자 주인이-그의 형도 친북파라고 교민들이 나에게 제보 했다 - 여하튼 그 우체국 주인
이 나를 우체국 옆에 있던 식당으로 초대했다(나는 그 때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했다), 그
때 식당 이름이 '명동 식당'.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면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주시한다.(이
때부터 기자는 관상가로 경험하기 시작한다) 한다는 말이 "신문 비니지스를 하기 힘들지요
? ... 이거 테이프 한 번 봐요. 다음에 나에게 연락을 줘요.."

(여기서 특기할 것은, 그 때부터 기자에겐 이상하게도 귀신이 붙었는지 악질 교민, 친북좌파
교민들이 흡사 '나를 죽여 달라'는 식으로 기자에게 접근하다가 결국 그들이 스스로 당 한
다는 사실들이 나타나 오늘까지 그 현상을 이해 못한다는 것이 기자의 심정, 그것은 확실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다. 기자에게 귀신이 붙었나 ? 아니면 하늘이 돕는 것으로 오판 중이
다.



--- 교민 빨갱이들에게 고소를 당해 미국 법정에 섰던 기자의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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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우체국 주인의 친북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사정 없이 신문에 보도하자,
우체국 주인이 나를 고소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미국 LA 법원, 그 법정에 혼사 서는 경
험을 한다. 옛날 시골 대학에서 한 법학교수가 {사법시험에 합격되지 않아도 사회에 나가면
법학이 유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뇌리에서 스쳤다.

1984년 경. 이 때 나는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서 홀로 법정에 나가서(통역관을 데리고) 고
소인 우체국 주인과 논쟁을 했다. 이 때 백인 판사는 우체국 주인 고소인에게 {우체국에서
북한 비디오 테이프를 리스(임대)해 준 일이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체국 주인은
{예스,.... }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나는 판사에게 {.... 이 사람이 나에게 북한 김일성의 소련 방문기 비디오 테이프
를 주면서 "감상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신문에 "우체국 주인이 북한 공산당 김일
성 소련 방문기 테이프 등 여러가지를 교민들에게 리스 해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이 기사
때문에 불만을 가진 고소인이 나를 고소했다.."라고 진술하자, 판사는 갑자기 열을 받은 듯,
회전의자를 홱 돌려 자리를 고쳐 앉아 사납게 눈동자를 굴리면서 고소인을 정면으로 째려보
면서,{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은 우체국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리스해 주
면 우체국 허가를 취소한다 !... 배부전 기자는 우체국에 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체국 주
인과 언쟁은 하지 말라...}고 판결했다. 즉, 우체국 주인은 나를 그의 우체국에 출입을 못하
게 했던 것. 재판 끝.

오늘 기자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북한찬양 교민으로 부터 고소를 당해 받은 첫 재판결과
는 우체국 주인이 되레 역습을 당했다. 내가 승소했던가. 미국에서는 불법적으로 북한 찬양
선전물들을 이용하면 일단 정보수사기관들로부터 주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 무렵, 나는 밤 9시 경 40대 한 교민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나 좀 도와 주세요. 내가
교회에서 만난 남자가 빨갱인 줄 모르고 재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빨갱이예요. 남편은 나를
데리고 신한민보(당시 친북신문이었고 발행인 김운하. 그는 지금 유럽지역에서 거주 중이
다)기자들 등 모임에 데려가 북한노래를 부르고.. 이제는 남편과 시어머니 까지 나를 "시집
이 있는 평양에 갔다 오라"고 해서 놀라 어제 밤에 집에서 뛰쳐 나왔어요.. 맨발로 택시를
타고...남편이 지금도 전화로 나를 위협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나를 도와 주세
요}

나는 뒷날 LA 총영사관으로 달려 가 당시 안기부 책임자 000 거점장에게 이 사실을 알
렸다가 언쟁이 벌어졌다.

{여기는 제3국이야... 손대지 마...}
{네에 ? 제3국이라고고요 ? 그러면 .... 안기부에서 여긴 왜 나왔어요 ? } 순간 나도 모르게
양복 안주머니에서 기자수첩을 꺼내 들고 그의 말을 메모하려고 펜을 잡았을 때 나는 순간
"아차, 내가 무슨 짓을 하나.." 손에 잡은 볼펜을 밑으로 내렸다.
{ ???? }
1분 가량 긴 침묵이 흘렀다. 서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아군 끼리)정면을 바라보고 응시만
했다. 그 때, 부총영사 사무실에서. 충성을 맹세했던 내가 이 때 대실수를 했다. 나는 이상
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민망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날 듯이 엉덩이를 치켜 올렸다.
{제, 갑니다...}

이 때 또 실수를 했다.
명색이 부총영사인 그가 문을 열어 줄듯이 모션을 취할 때 내가 나도 모르게 아가리에서
{손 치워 ! 씹하알.... !}
그는 더욱 어처구니없었든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그 날 그 눈빛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는 그 후일 서울로 조기 귀국, 약 4개월 만에 면직되었다. 또 다
른 이유로. (생략)




--- 대책 없는 북한 세력들의 교민포섭 공작들은 이미 [재미 조총련]조직 완료 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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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LA교민들이 나의 신문을 읽고 제보라는 놀라운 교민사회의 친북한 세력들의
공작은 위험수위를 초과했다. 교민들은 그동안 말 못했던 친북세력들의 암약사실들을 계속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중 제보자들은 남의 눈이 무서워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거나
전화로 알려 주었다. "내 이름은 밝히지 말라요. 나 잘못하면 죽어요... 테러를 당해요.. "
간곡한 부탁들이 줄을 이었다.

"친북한 인사들이 계속 북한을 방문하고 있어요... 친북 목사, 학자들이 교민들을 상대로 '학
습'을 해요, 그들의 강연내용은 친북 반미적이다... 그들은 또 6.25 전쟁을 남한이 북침을
했고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고 가르치고 있다...우리 회사 광고를 신문에 내지 마세요. 그
냥 광고비만 받아 가세요. 배기자 신문에 광고를 내면 '손님으로 찾아가지 않겠다' 하니...
술집에 이상한 여자들이 있어요. 북한 앞잡이 같아요. 또, 일본서 온 남자들과 사귀는 것을
볼 때... 여자들이 일본 남자에게 3만 달러를 받고 위장결혼을 하고 영주권을 내 주고 있어
요. 일본서 온 남자들은 조총련 같아요.... 크린샤워 와 올림픽 코너에 있는 술집에서 간첩들
이 접선을 해요... 베벌리 옷 가게에 북한서 온 여자들이 조선 여자 옷을 입고 두 사람이 옷
을 사면서 그들끼리 한다는 말이 {이런 옷을 입으면 당에서 비판을 받지 않을까 ?} 수군거
리고 있다 ! ... 일본 조총련 자금이 들어 와 교민들을 포섭하고 있다 ! ... 우리 목사가 극비
로 캐나다를 갔다가 이북에 갔다 왔다 ! ... 북한에서 엘에이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가 온
다...우리 목사님이 이산가족을 만난다고 북한에 갔다 와서 매일 울고 있다 .... 북한에서 미
국 이산가족들에게 편지가 막 날아온다. 어떻게 미국 주소를 알았는지 북한에서 편지들이
미국으로 막 날아온다... 배삼룡 코미디언이 부도를 내고 캐나다에 피신 해 있는데 북한 간
첩들이 그를 회유하여 곧 북한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이를 막아 달라...(당시 기자가 이 사
실을 보도하자, 안기부에서 그를 데리고 서울로 귀국 했다)

'3일의 약속' 책 저자가 북한에 갔다가 온 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자금지원을
많이 요청 한 것 같다...LA무용인들이 북한공연을 갔다 왔다... 체육인들 중에 친북한 동조
자들이 있다... 친정부 교민들이 낮에는 친정부 활동, 밤에는 반정부 운동을 한다...광주사태
때 미국으로 피신한 청년들이 LA 민족학교에서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 반정부 학생 청년들
이 서울로 나가 반정부 활동에 가세한다, 부산 미문화원에 불이 났다, 운동권 학생들이 서
울 미 문화원을 점거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주체 사상파들이 전두환 정권을 타도 중심
에 섰다...

서울에 침투한 간첩들이 지하철 등에 붉은 글씨로 북한선전용 벽보를 붙이고 있었다.
(기자가 서울 방문 중 이 같은 사실들을 확인)서울 공항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청년들만
골라 서울에 침투한다, 청년들이 북한을 방문한다.. 이산가족을 만나려면 북한 안내자들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 코리아타운 한인 우체국 건너 하우스 2층에 일본서 온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연맹)들의 아지트가 있다 ! (그 때 미주통일신문이 추적, 탐문 취재하여 조총련 조
직원으로부터 확인 받아 폭로, 특종 했다. 당시 LA 파견 안기부 영사들도 이를 인정해 주었
다. 관련 제보자는 오래 전 부터 한인타운에서 보이지 않는다) 또 북한산 마약이 미국에 들
어 와 롱비치 항에서 LA 코리아타운으로 운송되고 있다. 한인 청년들이 3천 달러를 받고
북한산 마약을 운반해 주고 있다는 특급 제보가 들어 와... 그 후, 미국 연방수사국 요원들
이 제보자에게 기습, 체포했다. (당시 운반자들의 소재를 알고 있는 보스를 내가 우연히
알게 되어 기자가 즉시 미국 연방수사국에 신고, 특종 했고, 그 후 미주통일신문 대표가
F.B.I 등 미국 주요 기관들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 교민사회에서 암약하는 친북한 세력 준동 침투차단 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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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소련 영공침범, 소련 전투기에 의해 KAL기가 피격,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나는 [재미 한국인] 신문은 [미주통일신문]으로 긴급히 제호를 변경, 본격적으로 반공신문,
북한체제를 연구, 취재하는 전문 언론사로 재출발했다. 그 때 [미주통일전략연구소]를 동시
설립, 켈리포니아주 주정부에 등록하면서 교민회원 100여명으로부터 가입 사인을 받았다.
물론 동 연구소 소장은 배부전 기자.

창간 신문 발행 직후 걸려 온 전화, {여기는 총영사관, 000 부총영사 입니다.... 신문을
잘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있으십니까 ? 만나고 싶은데....}
그 뒷날 우리들은 만났다. 총영사관 건물 옆 중국 식당에서. 그들 중 000 안기부 차석은
나에게 {본부에서... 신문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으면 말씀 하십시오 ! } 기자는 어리둥절
했다. 이때부터 LA교민사회의 정서 상황들을 몰라 바보 기자의 운명이 시작된다. 나는 엘에
이 반공보수 세력들 중에서 소신 있는 분들도 있었으나 다수가 낮에는 친정부, 밤에는 반정
부활동 내지는 언동을 하는 2중 플레이를 하는 동포사회 라는 사실을 판단 못한 실책했다.

2010년은 그런 일이 없으나 전두환 대통령 시대는 그랬다. 나는 나를 돕겠다고 찾아 온 순
수한 정보요원들에게 {애로사항은 없습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당분간... }말하자,

{예 ? 혼자서 할 수 있다고요 ? 이런 신문을 혼자서 할 수 있다고요 ??? }안기부 영사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 표정들이었다. (편집자 주 : 요원들의 실명
을 생략해도 됨. 김천웅 영사와 정 00 영사)

나는 다시 그들에게 {네에, 혼자서 할 수 있어요...}대답했다. 우리들의 대화는 끝났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들은 헤어졌다. 그 때 기자는 바보였다. 그들에게 애로사항을 말했더라
면 지금은 기자의 입지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988년 총선에서 국회 통일분과위원 자리
는 따 논 당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중대한 오판이었다. 미국 LA 엽전동네의 생리를 몰랐던 것. 즉 반공신
문이 창간되면 일본사회 처럼 반공세력들이 나타 날 줄 알았으나 창간호 발행 3회 째부터
특정 교민인사들 까지 반공지를 기피하는 현상이 노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 일부 2, 3명의
민주평통 위원들만 기자에게 거지 동냥을 주듯 2백불 정도 선에서 광고비를 주었을 뿐. 주
간지 발행이 최악 상황에 왔다. "이를 어쩌나 ? 내가 아사리판 엘에이 엽전 동네 생리를 몰
랐구나" 내가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안기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었구나..." 그제서야 나는 그 때 만났던 안
기부 영사들의 말이 생각났다. 뒤늦게 그들의 의도를 알았다. 허나, 배는 이미 떠났다. 뉴비
콘 강을 건넜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 이미(신문 창간 3개월 만에) 나에겐 북한 바이러스가 들어왔던 것. 당
시 안기부들이 쉬쉬 했던 미국 교민사회의 친북활동 등 좌파들의 교민포섭 등등 활동을 일
체 공개하지 않고 내부 문건 정도로 첨부파일에 담았을 뿐일 때, 나는 정부당국의 사전 조
율도 없이 어느 언론도 보도 못한 북한 실상들을 과감하게, 미친 개새끼처럼, 물을 만난
고기처럼 보도했던 것.

특히 본국 언론에는 냉전시대답게 김일성 부자 실제사진들은 물론 북한 당, 정, 군부의 실
제 사진들을 보도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나 나는 1982년부터 북한에서 미국으로 날아 오
는 로동신문, 평양신문, 통일신보, 등대 화보(미국 라이프 지 같은 것. 여기서 나는 북한체
제의 실체를 90% 이상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나 고마운 사진 화보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일본 조총련 기관지들을 닥치는 대로 입수 했고 그 때 북한당국이 오판, 나를 회
유할 목적 등으로 1984년 어느 날 북한 측에서 보낸 로동신문 등등 북한 신문들이 우체국
사서함으로 날아왔다. 신문 무더기 소포였다. "아뿔싸 ! " 나는 그 때 놀라 탄성을 질렀다.
또 그 무렵 통일교 곽정환 목사가 나에게 5천 달러 기부금을 보내왔다. (그 때는 통일교가
반공노선 지향)


여하튼 나는 그 때부터 1980년대 북한 현재의 체제 동향 동태들을 파악하는데 흥미를 가졌
고 [1930년 전후의 공산주의 이론] 보다 [1980년대의 북한의 현재 상황] 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 화근(?)이 된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구경도 못한 김일성의 건강한 사진, 목 뒤에 달린 혹,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건재한 후계자 활동사진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건강한 모습, 로동당 전
원회의 등등 무서운 북한 정권의 실상 및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고, 기자는 그 때부터 북
한에 코드를 맞추고 '북한 생체학' 공부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북한사
진, 기사들을 읽으면서 날을 밝힌 횟수를 헤아릴 수 없다. 내가 북한실상 그 체제를 공부한
지 1년도 안될 때 나는



"이거 단순한 반국가 단체가 아닌데... 공산혁명 정권, 민주정권이 아닌 김일성 개인 정권...
김일성은 한반도 공산화 전략만이 목적...북한정권이 자리를 잡았는데...자유민주 체제가 아
닌 북한식 자유민주 체제로 변신, 김일성 우상화, 신격화 작업이 완료, '5대 군사노선' 완료
? 남침용 땅굴을 팠다 ? 금새 무너 질 정권이 아닌데...호락호락 넘어 갈 북한이 아닌데...
주민통제 수단이 우수한데.. 언론의 자유들은 무너졌고...광주항쟁 같은 사건은 일어나기 틀
렸고...

쿠데타 ? 안 돼. 이 놈들이 가가호호 담당 제, 5호 담당 제를 가동, 반동분자 색출방법이 완
전 정착, 가동, 반정부 활동은 꿈에도 할 수 없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만
보아도 당과 군부는 일심단결 김일성주의자들로 조직되었다. 신문 방송들이 김일성 부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여 될 일이 아닌데.....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에서 보았듯 그 수준이 아닌 막강하고... 인민군들은 남한 공격형, 기
습 공격 훈련 중이고... 휴전선 지역에 전진 배치된 북한군 위력은 가히 살인적이고... 평화
통일 꿈은 꿀 수도 없고..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사기수법, 적화통일이 최대 목표, 3단
계 통일전략들이 있네... 위장평화 전술전략 ? 모택동 대화의 협상전략 ? '3자회담'을 하자
고 ?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으로 피랍 ? ....남북한 통일은 어렵겠구나..."



이렇게 판단하는 상황으로 진입. 또 나는 1984년부터 당시 거금 600 여 달러 항공료를 주
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판문점에 날아가서 북한의 실체 그 현장들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
하고 자 했다.

이름하여 세계 유일의 동족 간의 분단지역, 아직도 휴전 상태인 남북한 공동경비구역(JSA)
- . 나는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리는 남북경제 회담 등에서 두 번 취
재, 또 서울 워커힐과 명동거리를 방문한 북한 대표단과 기자들이 서울시민들의 눈과 마주
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꼴들을 보고 나는 결국 "아, 눈물의 한반도여 !.. 통일은 어
림도 없겠구나... 저런 사람들과 어떻게 통일을 하나..." 라고 탄식했다.

당시 나는 북한 위장기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살펴보았다.
회담장에 나온 북한 대표들의 언동, 뼈만 남은 듯한 앙상한 몰꼴, 먹지 못해 굶주린 표정과
누른 색깔의 치아상태, 남루한 옷차림, 상호 감시체제, 2명씩 붙어 다니는 조직에서 "남북대
화는 북한이 남한처럼 잘 살 때 가능하겠구나..." 북한의 대화 허세, 오만 그리고 북한의 지
능적인 위장평화 전술을 알았다. 조국통일을 외치는 대남대화는 쇼, 북한 김일성 체제선전
을 위한 남조선 사회교란을 노리는 등 '통일전선' 획책을 알았다.

다시 판문점 남북경제 회담. 그 때 {미국에서 왔지요 ? 캐나다로 해서 평양에 한 번 오시
오. 미국에선 올 수 있지 않아요 ?... ...} 기자가 만나 잠시 대화를 하던 북한 기자들이 불
쑥 그런 말을 했다. 두어달 후 기자가 다시 판문점 취재 차 갔다가 구면의 그 북한기자들을
만났다.

{그 때 취재를 많이 했는데... 신문에 좋은 기사가 났어요 ?...}그들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
가 와 귓속말로 묻기에, 내가 판문점에 온 기자들에게 뿌릴려고 미국서 가져 온 [미주통일
신문] 약 100부를 판문각 앞에 있던 기자들에게 까지 나누어 주었다. 그 장소는 판문점 군
사 분계선, 소위 38도 선을 넘어 들어 선 북한 땅. 나는 겁도 없이 무단 월북, 북한 땅에
을 침범(?) 했다. 북한 땅에서 사고가 나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가 있었고.

그 때 북한 기자들이 판문각 빌딩 아래 10여명의 북한 기자들이 화단 벽을 기대 선채 그들
끼리 담소하고 있기에 내가 JSA 공동경비구역의 38도선 지역을 넘어 가서 내가 만든 신문
을 그들에게 한 부 씩 나누어 주고 돌아서자, 그 때 {여 ! 여봐 !}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
신문의 1면 탑 뉴스 활자는 30회(?) 째 시리즈 [북한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였다. 김정
일 이름 앞에 최소한 '친애하는' 라는 수식어가 없었다. 존칭이 아예 생략된 것. 거기다 김
정일 얼굴이 사납고 또 인쇄발이 좋지 않아 김정일의 얼굴이 새까맣게 인쇄가 되었다.

북한 기자라는 50대 팔팔한 노기자들이 미주통일신문을 먼저 받아 펼쳐들고 어쩔 바를 모
르고 안절부절 한다. 그들의 손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그들 앞에 다가
섰던 것.

{이거 신문...누가 뿌리라고 했어 ?!?*&^$%$# ??... 김정일 이가 뭐야 ? }
{당신들도 신문에서 전두환이라고 하지 않아요 ?}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느낌이다. 그 때
그들이 순발력이 있었다면 나를 강제로 끌고 판문각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병신들.

그 때, 북한 기자들 뒤에 서 있던 한 놈의 서울 기자가 내가 북한 기자들과 언쟁이 일자,
그는 겁을 먹고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비굴한 걸음걸이가 나의 눈에 포
착 되는 순간, 나는 "아차, 이게 아니구나...큰일 났다"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 나는 잽싸게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북한기자들은 도망가는 나를 멀거니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나는 천운이었다. 그들은 그 때 발생한 사건이 판문점 개방 후 남북한 기자들끼리 그것도
38도 선 이북 땅에서 남쪽 기자라는 자가 겁도 없이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를 모독하는 신
문 배포, 초상권 등 침해사건이 역사상 처음으로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대비책이 있을
수 없었고 특히 미국에서 온 기자의 '처리' 방안을 몰라 북한 기자들이 한 참 망설이든 중
당한 것.

잠시 후, 북한 기자들이 미주통일신문 수십 부를 들고 경제회담을 하는 남북한 수석대표들
앞에 냅다 내동댕이를 쳤다. {위장 기자를 보내 이런 신문을 뿌려 ? ! } 회담 막판에 회담
이 깨졌다. 아수라장. 나중에 회담장에서 나온 남측 대표들이 모두 미주통일신문을 한 부
씩 손에 잡고 찬찬이 읽으면서 남측 평화의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날 밤 6시 KBS 등
TV에서는 관련 사진 뉴스들이 스파트 뉴스로 지나갔다.

뒷날 아침, 내가 잠자던 호텔 방에 걸려 온 전화, {저어, 여기는 문화공보부... 어제 판문점
에서 ... 그건 잘했어요...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나에게 기가 막힐 소릴 했다. "대화
를 하면서 깽판 치는 것도 잘했다 ?" 나는 사실상 정신적 혼란이 왔다. 그 무렵이었나. 국
회에서 이철 의원이 {미주통일신문은 정부가 지원 하는가 ? } 본회의장에서 정부 측에 따졌
다. 이 소식은 당시 LA 한국 문화원에 파견된 문공부 '김 유' 영사의 제보.
그 경위는 이철 의원이 얼마 전에 LA에 왔다가 반정부적인 언동을 한 것을 내가 나의 신문
에 그를 일부 비판한 기사를 실었다. 그가 그 기사를 읽었든지 누구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
었던 것. 그래서, 그가 나처럼 열을 자주 받는 스탈인지 국회 본의장에서 나를 씹었던 것.
(그 땐 인터넷이 없어서... 신문이 발행되면 우표 값만 약 200, 300달러를 들여 서울 언론
사 및 정당에 무가지로 국제 우편으로 배달했다)



--- 북한 실체를 모르는 서울 관련 장관들, 그리고 북한이용 전략 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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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4년 경. 서울 통일부 장관실. 내가 통일부를 방문하자 장관, 차관, 기획...팀 등 통일
원 참모 4, 5명이 나를 반겨주고 대담을 했다. 그 때 한 참모가 {어제 일본 언론에서 "김일
성이가 아프다"고 하던데.....} 말에 기자가 순간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소위 정부가 일본 통신 기사를 읽고 북한정보를 말하나 ? 또 김일성은 아주 건강한
데... 죽을 것 같다니....이 사람들이... "나는 크게 당황했고 정부 대북 담당자들에게 순간
냉소적으로 변했다.


2. 다음, 나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서정화 사무총장으로 부터 한강변이 있는 강남
식당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미주통일신문이... 우리 민주평통 부설 신문이 되면 좋겠는
데...}라고 말했다. 그 때 나는 또 실수를 한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뜻을 몰라 묵묵부답만
했다. 나도 참 무식한 기자인가 보다. 도와 주겠다는 사람들의 제의를 물리치다니 말이다.
정말 귀신이 그 때부터 붙었나. 하긴 1985년 50,000 달러 짜리 복권 2장이 연달아 당첨
되었는데, 나는 그것이(골든 벨 3개 아닌 2개라서 당첨이 아닌 줄 알고) 아파트 앞에 내다
버린 일도 있었으니. 그 때 그 골든 벨은 2개만 나오면 당첨이었다는 사실을 3일 후 쯤 알
았다. 그러나 내가 버린 아파트 앞 복권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3. 다음 통일원 홍보담당 과장(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서울에 오자 이틀 동
안 계속 나를 따라 다녔다.

'이 사람이 왜 이래 ? 근무 시간에 밖에 나와 돌아다녀 ?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 때 이틀 후였던가. 그는 마침내(?) 찻집에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 {.... "배 기자님이 빨갱
이가 된다"고 안기부 보고가 있습니다. 빨갱이가 될 분이 아니군요} 기가 찰 일이 이미 미
국에서부터 발생했으니.

4. {한건 주시오.... 미국 엘에이에 있는 미주통일신문을 하는 배부전 기자 말이요, 그 사람
배후가 누군지를 알아 봐 주시오. 그런 신문을 혼자서 할 리가 없고...그 뒤에 누군가가 있
어요. 미국 엘에이 영사들도 감을 못 잡겠다고 해요} 이 말은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10년 4월 경 LA 거주자이며 북파 공작원 출신 강철산 씨가 나에게 당시의 스토리를
알려주어 알았다. 그 때 강철산 씨가 안기부와 밀착된 인사, 그가 서울에만 들어가면 요원
들이 접근, "배기자.. 그 놈의 배후가 ?......" 정보를 캘려고 달려왔단다. 오, 주여....


5. 1987년 5월 경. 서울 통일부 김경섭 차관실. 김경웅 공보관 배석. {미주통일신문은 대
통령각하께서... 내년 새해부터 정부자금이 나갑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이젠 서울에선 누구
도 배부전 사장님을 손 댈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엔 통일일보, 미국엔 통일신문을 지원
방침이 섰습니다}

6. 그 이전, 나는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다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러
갔다. 그 때 나는 그 분을 만나 장시간 대화를 할 때 불쑥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북한과
대화할 때 그 북한이 {우리에게 위장전술) 사기를 치는 수법이 보이지 않던가요 ?}라고 묻
자, 그 분은 의외의 기자 질문에 약간 당황해 했다. 즉, "이게 무시기 소린가 ?" 한참 그 배
경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중략)


7. 다음,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대한항공 858기 공중 폭파 마유미 서울압송. 그 때
나는 서울방문 중, 대선 상황 때 서울 현지에서 또 신문을 제작 발행했다. 김대중 후보의
불순 사상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격하는 기사가 도배질이 되었다. 그런데, 여당 캠프 측
에서 {배 기자는 언제 미국에 갑니까 ? 빨리 서울을 나가세요... 김대중 비판말고...} 라는
전화가 왔다. "아니 이게 무시기 암시 인가 ? " 그 후 '사고'가 났다. 빚쟁이가 달려오더
니......중략.


결국 나는 서울을 떠났다. 엘에이에 도착한 12월 초, 나는 화가 났지만 기자근성을 속이지
못하고 [노태우 후보 당선 가시권에] 톱 뉴스로 활자를 뽑아 호외용 신문을 타운에 뿌렸다.
그 신문은 나중에 서울 보안사령부 대선 관리 팀에서 미주통일신문 호외용 100만 장을 복
사, 서울 장안에 뿌렸다는 말을 들었다.


8.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에 나타 난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북한을 탈출했다 !]는 긴급
뉴스.

그들이 뉴욕에 안착, 미국정부의 보호를 받을 때 1987년 구정을 맞아 LA에 있는 귀신 언
론인 배부전 기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발적으로 그들 부부가 LA도착, 코리아타운 소
재 우래옥 식당에서 50여명의 친지 영화인들을 만나 만찬을 할 때, 기자가 괜스레 그 식당
으로 발걸음이 움직였다. 정말이다. 나는 그 날 무슨 일로 그 식당에 갈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날 오후 6시 넘어 발걸음이 자동으로 우래옥 식당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귀신이 붙
었다는 증거.

식당 안. 마침 신-최 두 부부가 마이크 앞에 서서 말을 하고 있었다. 신상옥 씨는 검정안경
을 끼고 서 있었고 그 부인 최 여사가 참석자들에게 북한소식을 브리핑을 하고 있었을 때
였다. 그 순간, 기자가 최은희 여사의 북한 생활들을 10여 분간 들을 때 "아 ? 이상한데...
저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아닌데... 피랍자들이 북한 비판은 하지 않고... 표정이 또 왜
저래 ? 탈출자들이 아닌데 ?.....*&^%$#*& "

나는 그들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나의 직관력은 그랬다. 나의 북한상식 등으론 이해가 가
지 않는 그들의 진솔한 액션이 아닌 배우들의 연출, 연기를 하는 그들의 북한생활 고백 스
타일이 나의 안테나에 걸렸다. 나는 잠시 후 두 부부의 인사말이 끝나자 곧 바로 그들 부부
앞에 바짝 좁혀 다가섰다. "너희들 누구야 ?" 라는 식이었다.


최은희 여사는 1974년 경 내가 당시 '코리아 라이프'지 편집을 할 때 만난 구면. 신상옥씨
는 식당 안 실내인데도 색안경을 낀 채 입은 꾹 다물고 아주 거만한 자세로 섰고, 그 곁에
섰던 최은희 여사에게 나는 준비 없는 말을 했다. {김일성 건강이 어떠세요 ?...}물음에 최
여사는 {걸음걸이가 불편해....귀가 약간 어둡고...} 답변. 순간 (기자의 감각이다) 신상옥씨
의 굳은 표정들이 탈출자들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 최 여사 역시. 그러나, 그 때 그
들이 위장탈출 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여하튼 파티는 끝나고 우리들이 식당을 나설 때 그들 부부가 쓴 수기 (조국은 저 멀리) 글
에서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의 정상적인 탈출이 아닌 김정일과의 합의 하에 징기스칸 영화
를 제작하는 등의 목적으로 탈출극을 위장했다는 사실이 포착되었던 것. 내가 1982년 북한
연구 취재결과 5년 만에 이 같은 노하우가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기자에겐 늘 귀신이 붙었다고 하지 않나. 그런 자들이 스스로 "날 죽여 주시오"라
고 말하면서 나에게 달려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나중에 정부당국에서도 나의 특종사
실을 인정해 주었다. 서울 경찰 정보 팀들 까지 나의 북한실력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시간과 지면 관계로 첫 부분에 대해 충분 사실관계들을 정리 못해 죄송)


그러니까, 신-최 두 부부가 수기로 발표한 책자에서 내가 5년 이상 입수, 분석했던 북한
선전용 잡지 신문에서 본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등 101장 정도의 관광사진을 편집한 저의
는 북한선전용으로 판단했으며 또 그러한 사진을 소지하고 탈출했다는 자체도 가짜였고, 나
중에 확인이 되었으나 그 사진들은 모두 일본 조총련 등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추론이 가능
했다.

특히 김정일과는 2회 김일성과는 1회 녹음내용에서 김정일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용의가 있
다는 미국 접근용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파악(또 녹음기 입수 경위 및 녹취한 장소에서
사전 각본에 따른 상호 합의하에 행한 녹취였다고 판단했던 것) 및 영화광 김정일은 이들
부부와 [3년 계약에 따른 북한영화 국제 영화제 수상 조건]에서 성공한 이들이 징기스칸
대왕을 김일성 수령과 동격시 하는 영화제작을 위해 이들 부부가 미국 대사관을 의도적으로
찾아 갔으며 (탈출현장 도시 '빈' 수도에는 한국 대사관도 있다. 여기서도 이들의 위장탈출
목적 등이 드러난다), 탈출 당시 일본 모 통신 기자(조총련 소속)의 안내로 순조롭게 호텔을
빠져 나온 경위 및 당시 신-최 부부를 경호(?)하는 팀들이 예전과 달리 이들의 외출을 묵인
했고, 나중에 이들이 신-최 부부의 행방을 좆는 척 하는 생쇼에서도 위장탈출극 임이 그러
난 것.(그들의 수기에서 발견된 위장탈출극 증거가 무려 30여 케이스.)

나는 그 날 밤 약 4시간 만에 문제의 수기를 독파하고 {위장 탈출이다 !}라고 판단, 뒷날
아침 엘에이 총영사관 파견 안기부 요원에게 전화로 알렸다. {우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데...증거가 있어요 ?}라고 묻기에, 나는 거침없이 {증거 있다 ! 책 속에 있다 ! }라고 말했
다.

{책 속에 ?........... }
나는 {지금 호외 신문을 뿌리겠다....}라고 말하고 400달러를 하숙집 주인에게 급히 돈을 빌
려(돈을 빌릴 때도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돈을 빌리려고 아파트 주인 할머니에게 아주 흥
분된 어조로 "할머니, 신상옥이와 최은희가 탈출한 게 아니고 김정일이와 짜고 위장탈출을
했어요 !! 지금 신문 호외를 뿌려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할머니는 {뭐라고요 ? 신상옥이와 최은희가 위장탈출을 했다고 ?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
?.. 암, 신문을 내야지.. 여기 4백불 빌려 드리지..")


[신상옥-최은희 부부, 위장탈출 가능성 짙어 ...] 라는 헤드라인 뉴스를 뽑아 호외를 인
쇄하여 타운에 뿌렸다. 3천 부였던가. 반응이 굉장했다. 타운에 벌집을 쑤셨다. 연속 호외용
을 뿌렸다. 난리가 난다. 교민들의 반응이. (중략)

나의 신문이 보도된 후 미국 CIA 한국 담당 000 요원이 나를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당시
우리는 웨스턴 7가에 있던 '시연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의자에 앉아마자 나에게 첫 마디 인
사가 {신상옥 부부 위장탈출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 라고 첫 질문을 던진다.

나는 {북한 선전용 책자와 신문기사를 잘 읽으면 알 수 있다. 북한의 움직임들을 알 수 있
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 }
{네에, 북한에서 오는 신문 잡지와 한국에서 오는 내외통신(당시는 안기부 부설기관에서 발
행하던 일간 '내외통신')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아, 그래요... 무섭지 않아요 ? }
{나는 무섭지 않아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언론을 하니까요...}
{ ???? .... 영사관에서 도와주지 않습니까 ?}
{내가 오래 전에 실수를 하는 바람에 ... 지원을 못 받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
{.... 부도수표를 내는 수밖에 없지요}
{연방정부에 자금을 신청하세요... }그 때 그는 호주머니에 녹음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
다. 천하의 배부전 기자가 누군가 ? 식사 후, 우리는 헤어졌고, 일주일 후 그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연방정부에 신청을 했느냐 ?}고 묻는다. 그 때 연방정부 신청을 하려면
법무사, 변호사가 작성하고 수수료 등 500달러 이상이 있어야 했다. 나는 포기했다)

그 후, 2년 만에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위장탈출 했다는 결정적인 증인이 나왔다. 미국 LA
헐리우드 영화사에서 근무하는 서울대 총장 출신 유진오 박사의 친척이 북한과 공동으로 영
화를 제작하겠다고 평양에 가서 김정일을 자주 만났던 그가, 그 날 술에 취한 김정일이가
{... 신상옥이 짜아식, 내가 내 보내 주었는데 날 욕해 ? ....}불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가 LA에 돌아와서 그의 친구 한상만 씨와 얘기하던 중 이 사실이 드러났
다. 이 말을 들은 한상만 씨(로비스트)가 나에게 {특종 했더군... 신상옥과 최은희는 탈출한
게 아니고 김정일 이가 내 보내 주었대..} - (관련 직, 간접 증거는 약 30여 종 이상)

9.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부터 노태우 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나에게 날아 온 서울 편지들,
서울시 경찰국장, 국회 사무총장 등등 정부기관장들이 줄이어 나에게 "미주통일신문 사장의
애국심을 높이 치하하고 계속 해외에서 분투노력 해 달라"는 요지의 친필들이 쏟아져 들어
왔다. "

나는 그 때 "이건 또 무시기 현상 ? " 웃으면서 반가웠다. 다시 육군 보안사령부에서 까지
'보안 유지를 하라"면서 FAX를 통해 주요 인적 등등 정보들이 들어왔다. "아이고..." 나의
즐거운 탄식이었던가.



--- 노태우 정부 출범, 김대중 보다 앞서 대북 포용정책이 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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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982년에서 1987년이 마감되는 시간대로 진입. 1989년 전후, 소련의 연방
해체로 시작된 돌발적인 동-서 냉전해체 및 재편 상황이 일어났다. 그 때 노태우
대통령은 공산권 접촉을 시작, 중국-러시아 국가들과의 전방위 수교 외교작전이 시
작 되었다. 특히 박철언 대통령 특보, 이홍구 당시 통일원 장관들이 '우회로를 통한
북한접근'을 시도한다면서 북한문을 노크했다.

이 때, 미국까지 달려 온 통일부 소속 대학교수들이 나를 불러 만났다. {이제 달라
졌습니다. 당분간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조심하세요} 밤 8시경, 당시 올림
픽가에 있던 식당 강서회관(지금은 조선갈비)에서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 때 그들의 얼굴 표정들이 아주 긴장했고 조심스러워 했다.

1989년 경.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을 발표, 해외동포들의 북한방문 허용 조치
를 취했다. 세상이 놀라기 시작했다. 전두환 전직 대통령 시대와 차별화를 시도한
노태우 6공 정부는, 그 때부터 북한과 도박 게임을 시작했다. 그것은 후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 정책 보다 앞선 시초가 된 것.

그러나 나는 즉시, 신문 사설 등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은....이홍구 통일원 장관
은... 정부는... 어떤 근거에서 북한과 대화하려고 하는가 ?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대화를 하자는 콜을 먼저 받았나 ? 북한문제는 우리가 먼저 나선다고 되지 않는다.
그들이 대화하자고 할 때 가능하다.. 우회로를 통한 접근은 무슨 뜻인가 ?.....]

그 후, 소위 5공 청문회, 전두환 전직을 백담사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서울 구치
소로 각각 유배시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 여의도 국회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
을 위한 마유미의 대한항공 폭파에 대한 노태우 대통령의 대북 사례인가 ? ... 대한
항공 공중테러 당시 북한에서 노태우 대통령 후보 캠프에 사전 통보 했나 ?..." 나
는 상상할 수 없는 오해의 비약을 했다.

그 무렵 나에게 찾아 온 미국 파견 안기부 요원들. 그들은 평소 나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
었던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이제부터 우리는 북한의 맏형역할을 합니다.
배부전 기자는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준비 하십시오 ...}청천벽력의 지
령 아닌 언론사 요청에, 나는 그만 허탈감에 빠져 가볍게 웃었다.

{네에 ? 나를 북한에 가라구요 ? 우리가 맏형 역할을 한다구요 ? 안돼요. 북한이 우리 맏형
이라고 하는 놈들인데...북한과는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나는 북한에 안 갑니다..북한에서
먼저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다시 찬밥 신세로 전략, 왕따를
당하는 단계로 진입.다음, 내가 노태우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노태우 대통령 친위대 보
안사 팀에서 전임 대통령의 [미주통일신문 지원재가]를 백지화시키기 위하여 3명의(?) 요원
들이 LA로 날아와 하기환 이라는 LA 부동산업자의 빌딩에 입주해 있던 미주통일신문의
건물 '입주 계약서'에서 나의 사인을 위조하고, 주민등록번호(소시얼 남버)을 이용, 그들이
공모하여 미주통일신문은 법원에 파산시청을 시키는 천인공로할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즉시 FBI.에 달려 가 이 사실을 신고하고, 위조 사인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자, Y모 한국 담당 요원은 약 10분 만에 재빨리 돌아 와 {배 선생님이 우리
에게 보내주는 편지에 있는 사인과 대조해 보니 위조사인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 } 라고 물었다. 연방수사국의 위조사인 여부 확인작업 시간이 불과 8분 정도라는
새로운 사실에 놀랐다.

그 때 요원이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묻기에 나는 {위조사인범을 상대로 재판을
하겠다...}라고 말하자, 그는 {우리도 조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재판에
서 50대 백인 판사는 첫 재판에서 위조사인범 용의자 하기환을 법정에서 진술도
못하게 가로 막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앉아 ! ....입 닫아 ! " 판사는 언론사를
위장파산 시킨 범인에게 이미 유죄를 선고할 액션을 취했다. 고마운 판사. 댕큐 유
아메리카 !

그러나 한 달 후 속개된 정식 재판에서 만난 판사는 태도가 지난번과 달리 180도
가 아닌 2000로 이미 돌변 해 있었다. 판사는 피고인을 감싸고 있었다. 이 웬일 ?
3일간의 재판에서 {위조사인이 아니다}라고 판결. 피고인의 위조증거 사실을 입증
했으나 판사는 마이동풍, '사법부 독립'을 악용, 사기판결을 했다. 나는 즉각 영문을
작성, 이 판사를 미국정부 당국, 주지사 등에게 고발했다. 문제의 판사는 그 후 5년
후 죽었다고.

다음,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이 발표된 후, 나의 사무실 건물 주인(하기환 부
동산업자. 부동산 사기혐의자)이 나를 만나자고 한다. 건물주 사무실. 나는 그를 처
음 만났다.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대뜸 {이젠 미주통일신문을 집어 치우세요 !
여기서 나하고 부동산 신문이나 합시다 ! ... 다음 달에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도
평양에 가는데....}

"아니 ? 이게 누구에게 하는 말이야 ? 이 쌍놈, 웃기는 넘이네... 내가 누군지 모르고 ? 시
건방진 넘 !"

내가 혼자 말을 하다가 {북한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시작.... 그런 말을 나에게 어떻게
하나 ?! } 언쟁이 시작. 이는 필시 누가 조종,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다. 배부전 기자의 반공
이념, 대북 냉전사고 틀을 깨라고. (중략) 노태우 정부 팀이었다. 나는 사무실에 올라오자
말아 즉시 이 인간이 친북한계 부동산업자로 추정, 연방수사국에 조사를 의뢰했다.



---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요인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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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들의 대북 햇볕정책들이 실패했듯, 1990년 전후의 노
태우 대통령 팀의 중대한 실책은 역시 [북한정권을 장악한 자들의 '성격' 등을 확인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이 6. 29 선언, 즉 '대통령 선거 직선제' 카
드로 인해 노태우 후보는 당선을 보장한다는 근거가 없을 때 천운의 대한항공기 공
중폭파 사건으로 인해 표심을 끌어당길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공로는 당연히 북한
김일성 부자의 몫.

이 때 소련 붕괴 등으로 동서 냉전의 해체에 따른 국제적 정세에 힘을 받아 북한돕
기로 작정, 북한 지원책이 강구되어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까지 내 놓고 그것도
부족하여 연말 청와대 안에서 북한산 맥주들을 마시면서{금세기 안에 통일이 가능
하다...}면서 자기체면에 걸려 김대중 식 직선항로도 아닌 우회로를 통한 북한접근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판정패 국력만 소비하고 무위로 끝났다.

그 참패의 요인은 김일성 집단이 -지금과 같이 - 노태우 대통령을 기망, 사기를 쳤
다는 것. 그 사기의 포인트는 역시 [남북한 연방제 통일안 수용 요구] 조건에 걸려
노태우 대통령이 최종 노린 김일성과의 정상회담 추진이 5년 임기 막판에 허사가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것은 북한이 남한을 봉으로 간주, 남한 대통령의 임기
동안 최대한 뜯어먹고 임기 종반에 발로 걷어 차버리는 전문 지능적 사기수법에 걸
려 들었다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막 시작될 무렵, LA서 활동하는 남한 간첩이 나를 만
나 설득했던 스토리도 있다. 그는 {배 사장,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면 그들이 우리를
배반 하겠어 ? 북한을 비판만 하지 말고 동족을 돕는다는 마음으로(열린 마음으로)
북한에 접근하자....}면서 조심스럽게 나의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내가 공부한 북한체제는... 그게
아니예요... 그러한 식의 접근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북한
의 의도는 남한적화가 목표입니다}

다음, 1991년 12월 이었나. 소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발효를 하기 전, 서울 모
처에서 {북한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 하자는데 그 의도를 분석 해 달라..}는 요청
이 왔다.

그 때 나는 하루 동안 북한 관련 자료들을 뒤적여 그 해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모
택동 전술]에서 기인하는 '실타래 풀기', 즉 일이 풀리지 않고 얽힌 상태에서는 일
단 얽힌 실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나간다 것이며.. 그것이 다 풀리면 그 때
다시 공격한다...는 식의 전술.

그래서, 나는 [북한의 남북기본서 합의의도는... 1년도 넘기지 못하고 끝난다... 북한
은 지금 경제난으로 (해법을 찾아) 인해 우리를 이용하기 위하여 위장평화 공세를
펴는 것이다]라고 리포트를 하여 팩스에 밀어 넣었다. 그 때 남북기본 합의서는
그 후 7개월 쯤 후 판이 깨졌다. 그것은 또 1972년 7.4 공동성명 발표 후, 판을 깬
북한의 상습사기 행각 패턴과 같은 것.


다음, 노태우 대통령 당시 문제의 [7.7 선언]을 통한 해외동포들의 북한방문 허용
조치로 인해, LA 나성영락 교회 은퇴목사 김계용 씨가 40여년 만에 방북, 김일성
면담거절 등에 따라 현지에서 독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

나중에 추가 취재 중 김계용 목사는 독살을 당하지 않았고 일시 심장이 멎는 약을
먹고(점심 때 밥에 약을 탔다. 그 아들의 소행 추정)방에서 쓰러지자 (그 때 그 집
앞에는 이미 병원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기조들이 김계용 목사를 곧바로
병원차에 싣고 달아났다. 그 후, 김계용 목사는 병원에서 소생, 병원 침대에 수갑을
차고 개목줄 처럼 걸려 있었다는 증언자가 있었다. 나성 영락교회는 이북 출신들의
아지트. 그 곳 친북한 조직들이 김계용 목사를 꼬드겨 방북 시켰다.

다음, 1997년 초, 내가 서울에 도착한 후 노태우 전직의 집 팩스 남버를 알아 낸
다음 이 같은 내용의 글을 팩스에 밀어넣었다. 아침 5시경. 그 시간은 노태우가 인
근 테니스 코트 장에 가는 시간대. 이 시간대를 맞추어 나는 그에게

"나는 미주통일신문 배부전 기자 입니다.. 당신이 대통령 당시 내가 북한협력을 하
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안사 요원들이 미국에 와서 나의 신문사를 위장파산 시켰다.
이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이 재가했던 정부지원금이 스탑 되었다. 나는 죽을 때 까
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는 요지였다. 그 이틀 후 신문에서 [어제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테니스 코드 장에 가던 중 심장 등 문제로 병원 행...]했다는 뉴스가 나왔
다.

다음, 내가 노태우 대통령의 소위 해외동포 북한방문 허용에 따른 남북화해 협력
무드로 인해 일어 난 부작용(?) 사건 시리즈들.

1. 판문점에서의 북한기자들의 방북유도 요청은 차치하고, 1990년 전후 북한 요인
들이 대거 LA방문 러시, 그 중 주유엔 북한 대표부 한시해 전직 대사와 북한 해외
동포원호위원회 참사 로철수가 LA를 방문, 뒷날 그들이 LA공항을 떠날 때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공항취재차 나온 나를 붙잡고 유혹, {평양에 갑시다... 지금 우리와
같이 방북하자고 약 30분 이상 나를 설득 했던 추억 아닌 추억이 있으며,

2. 전술한 대로 한성렬 주유엔 북한 대표부 공사의 전화 콜. 그는 서울 안기부 같
은 북한 국가 보위부 내지는 해외 공작조. 그 때 그는 내가 입으로 "만납시다..."라
는 말이 나오기를 학수고대 했었던 분위기 였다. 그러나 나는 노 댕큐.

3. LA 침투 암약 북한 공작원들이 "배 기자님, 형님... 북한에 다녀오세요...가이찌
조총련 보스가 부탁하니... 안 가면 권총으로 쏴 죽일 수밖에 없으니...차도 사주고
여자도 ..." 각종 유혹, 협박, 테러 행위들 발생. 그 중 1985년 경 코리아타운에 있
던 세종회관 주차장에서 나에게 공격한 일본 조총련계 20대 청년이(마약 중독자.
북한 간첩들이 행동대 포섭을 할 때 마약을 복용시켜 마약 중독자로 만드는 듯)
{형님, 끝까지 말을 안 들어요 ? 갑시다, 그리피스 공원으로.. 거기서 총살 시킬 것
이니...} 나는 {내가 죽어도 옷은 제대로 입고 죽어야지, 임마... 나 집에 가서 옷 갈
아 입고 갈테니... 같이 내 하숙집으로 가자}면서 유도, 나는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아 버렸다.

뒷날, 집 앞에 있던 나의 자동차가 박살이 났다. 그 피해는 누구도 배상하지 않았
다. 나는 피해를 보았다. 그 후 자동차를 살 돈이 없어서 5년 이상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다. 당시 영사관 파견 영사들은 강 건너 불 아닌 물 구경만 하면서 나에
게 오는 수 십만 불 이상의 자금을 서울 본부 놈들과 짜고 해 먹는데만 혈안이 되
었다.

4. 장도영 육군 대장 출신을 유인, 북한 행, 김일성을 만나게 해 주었던 2중 간첩
이라는 닉 네임을 가진 '폴 장' 씨. 그도 어김없이 나를 만난다.

1984년경이었나. 초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장장 6시간 이상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3가에 있던 양주 집에서 {배 선생, '통일신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
닙니다...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조국통일을 위해 교량역할을 합니다....내가 장
도영 장군을 모시고 평양에 다녀 왔으나 우리는 빨갱이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
리가 평양을 떠날 때 3만 달러를 주었으나 우리는 받지 않았습니다..같이 평양에만
다녀옵시다. 배 선생이 평양에만 다녀오시면 그 땐 미국에 있는 우리 동지들이 미
통일신문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 동지들이 100불 씩만 내도 신문사 운영이 됩니
다. 사진 식자기도 사무실에 턱 들어 갈 것이고...}

두 사람이(그 중 한 놈은 미국 동포가 아닌 북파 간첩이었다) 나를 설득 회유한다
고 술값이 약 200달러 이상이 지출되었고, 새벽 1시 경 내가 {그러나 나는 지금 북
한에 가지 못합니다. 좀 더 있다가 가지요...그 때...}

이렇게 거절하자, 그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흡사 테러를 할 듯한 눈초리였다. 그
들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고. 그들의 눈에선 살기가 있었다. 그 후 나는 어떻
게 내가 거주하는 하숙집까지 찾아 왔는지 모를 정도로 피로에 지쳤다. 이 사실을
뒷날 총영사관 안기부에 알렸다. 김천웅 영사에게. 그러나 그들은 관련 사실에 대해
일체의 응답이 없었다. 그들은 개새끼들 보다 못한 놈들이었다.



--- 1993년 전후의 김영삼 대통령의 북한 게임은 무승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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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가 끝난 후 '3당 통합'을 통해 적군에 합법적으
로 침투, 여당 대통령이 된 야당 출신의 김영삼 총재는 북한에 대해선 그 인식이
곱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 나중엔 북한동포는 우리의 민족이기 때문에 어느 민족
보다 우선적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외국에서 쌀을 수입해서라도 북한을
돕겠다고 부연했다.

그 무렵 황장엽 로동당 비서의 망명, 1994년 북핵 사태로 인해 미국의 북한 핵기지
공격에 반대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태도는 일부 이해할 수 있었으나(이는 미주통일
신문의 분석이다) 그 때 김영삼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공조하여 일단은 미 항공
모함들이 원산지역에서 대기, 영변 기지공격을 하는 액션을 취했어야 했다는 것이
다. 그랬더라면 북핵 문제는 오늘처럼 장기화 되지 않고 비핵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이 미주통일신문의 판단이다. 이 또한 김영삼도 북한체제의 속성들을 몰라 역이용
전략들을 활용 못해 오늘 한국-미국정부는 비참한 꼴이 되었다는 것.

특히 김일성과의 정상회담 직전에 김일성 사망 사건은, 그 아들 김정일이가 아버지
가 미국에 가서 낚시를 하겠다, 남한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그는
아버지의 노망기에 당황, 묘향산에서 특수 살인 팀을 동원 독살 한 것. 이 또한 미
주통일신문의 자체 판단이었다. 이 분석자료를 당시 미국 주요 정보기관에 제출했
고, 그 뒤 사흘 만에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김일성 사망원인은 심장마비가 아닐 수
있다]고 보도했었다.

다음, 김영삼 대통령 임기 종반전에, 나는 그의 아들 김현철이가 부통령 역할을 하
며 권영해 안기부장 인사권 까지 좌지우지 한다는 등등 놀라운 정보들을 입수, 나
는 팩스(그 때는 인터넷이 없었다)기를 동원, 한국 주요 언론사, 정당에 김현철의
무소불위의 아버지 권력악용 남용사례들을 폭로했다.

이러자 LA영사관에 파견된 경찰 담당 영사가 숨이 넘어가는 얼굴로 달려 와 나를
만난 자리에서(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자금을 드릴테니... 어제 올린 김현철씨
관련 기사가 오보였다고 써 달라}고 딜을 했었다. 웃기는 영사, 미주통일신문 기자
는 주요 기사에 관련하여 오보가 없으며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기사수정이 없다
는 언론정신을 몰랐다. "여보 ! 말조심 해 ! .." 그 날 그런 욕을 하려다가 꾹 참았
다.

또, 지난 스토리지만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한국 주요 파트에서 김대중-
김영삼의 각종 비리 파일을 나에게 보내 와 폭로를 요청, 일부 김영삼 후보 부분을
폭로했었다. 나는 그런 일들이 '애국'으로 생각 했다. 이 때문에, 나는 김영삼 대통
령 당시 찬밥 신세가 된 적이 있었고, 당시 그 파일을 폭로하라고 파일을 가져왔던
한상만 이라는 로비스트가 미주통일신문에 전달하라는 돈을 서울에서 미리 받아
착복 사기를 친 사실을 뒤늦게 감지.


또 다시 생각나는 일은 내가 김현철 관련 기사를 폭로하자 막 출근,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걸려 온 전화, {여기는 뉴욕에 있는 주유엔 북한 대표부에 한성렬 공사입니
다..... 김현철 관련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그 전의 기사가 필요한데.... 보내 줄 수
있습니까 ?....}등등 말을 했다.

나는 {아, 그래요... 네에, 네에... }건성으로 말만 하고 끝났다. "야이 개새끼 야, 내
가 누구라는 것도 몰라 ? 빨갱이 새끼가..." 욕설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제 김영삼 대통령 시대의 대북문제들을 다이제스트 하는데 있어서 첨가할 특기사항은
북한의 남침용 장거리 땅굴을 확인하고도 김영삼은 개인의 민주화 투사 영웅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일체의 정치적 안보적 급변사태를 통해 희석시킬 수 없다는 소아병적 사고가 육군
땅굴 탐사 책임자 전용운 소장 팀이 발견한 강원도 - 동두천 - 임진강 코스를 뚫고 내려
온 북한의 땅굴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개탄한다는 것. 1991년 경 미국 LA
에 왔다가 만났던 전용운 육군소장과 미주통일신문 대표 등은(강남회관 식당에서)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전 소장의 부관 모 중령으로부터 보도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들었던 상기 [땅굴
3개 코스]정보에서 "김 대통령이 이를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는 충격적인 말에 미주통일신
문 기자는 참지를 못하고 그 후 3일 만에 FAX를 통해 미국 백악관, 국무성, 각 언론사, 또
한국의 주요 정부기관, 언론사에 북한땅굴 발견, 미공개 관련 기사를 전송했었다.

그로인해 전용운 육군 소장은 전격 예편되었고, 관련 중령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다
만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당시 칼럼니스트 잭 앤드슨 씨가 미주통일신문의 관련 기사를
발췌 보도하였다. 당시 미주통일신문의 관련 기사를 LA거주 '샘한'(한국명 : 한상만)
로비스트가 받아 잭 앤드슨 칼럼니스트에게 전달하여 보도된 것.

또 하나 추가 사실은, 1996년, 1997년 사이 내가 서울 임진강 접전지역인 경기도 화성에서
땅굴을 파는 보안사령부 출신들과 특히 우물을 파는 회사(하성 지하수 개발. 당시 전화 번
호는 015- 242- 8937. 0341- 988- 8937번) 사장 김천환씨를 만나 북한 땅굴소재 등을
파악, 그 때 이미 북한 장거리 땅굴이 김포공항 지역까지 파고 내려왔다는 증거들을 입수,
확인했고, 나는 관련 증거물을 가지고(지하 댕차 지나가는 소리, 땅굴 파는 북한군의 말소리
등 녹취 테이프)이를 미국에 와서 TV방송들을 통해 보도했다.

그 때 기자에게 제보한 김천환 씨는 {내가 땅굴을 발견했다고 하자... 청와대 비서들이 나에
게 찾아 와 돈 봉투를 주면서 "일체 말하지 말라.... 이것은 대통령 몫이다. 개인s 땅굴이
발표하지 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 육군 땅굴 탐사과 요원들(탐사 팀장 예병주 대령, 조승종 중령)은 나를 나를 탐사과
사무실로 초대, 관련 민간인들의 땅굴 발견사실을 부정하고 "이들이 보상금을 받기 위해 허
위진술 했다.. 그들은 사기꾼이다.."라고 매도했다. 심지어 탐사과 요원들은 기관총 소리를
녹음해 와서 나에게 "민간인들이 녹음했다는 소리"라고 거짓 증언을 했다. 기가 찰 일이었
다. 민간인들이 땅 속에서 땅굴을 파는 기계음과 지나가는 갱차 소리는 기관총 소리가 아니
었다. 이들이 오늘 천안함 사태를 몰고 온 공범이다.

여하튼 그 때 육군이 "땅굴을 은폐하고 있구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안기부는 북한
의 땅굴사실들을 이미 인지했고, 심지어 북한군들이 파는 땅굴기계 중 스웨덴제 모소음, 무
진동 최신 기계를 도입한 것 까지 알고 있었다.(당시 서울 세종호텔에서 나와 만났던 안기
부 요원 2명이 말했다. 그러나 땅굴 전담은 안기부가 아닌 육군이었다)

현재 북한의 30년 이상 팠다는 땅굴은 서울전역을 카버했고 대전 지역까지 파고 내려 간
것으로 추론한다. 지난 2003년 경 북한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제보한 내용 중 {북한군 갱도
사령부(땅굴 담당 부처 지칭)한 장성의 집안 사람이 "남조선 갱도사업은 다 끝났다"고 한다
고 갱도 사령부 장성의 말을 전해 주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해군들이 훈련을 마치고 귀항하던 중 맨 나중에 따라오던
구축함(?) 한 대가 원인불명의 좌초 사태 발생은 (미주통일신문의 판단, 보도했음), 당시
북한 잠수함 부대들이 훈련하던 한국 해군의 함정 밑에서 동시 훈련을 하면서 맨 나중에귀
항하는 함정을 바다 밑으로 끌어내렸던 것으로 추론. 북한의 잠수함 전력, 땅굴 위험성을
과소평가할 때가 아니다. 북한 잠수정들의 동향을 파악 못하면 바다 위에 뜬 군함은 장난감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군은 외화내빈, 겉을 화려하게 하는 전시 쇼에 치중할 때
북한군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가져오는 전략무기를 생산, 훈련했다.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들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대북정책의 실패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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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들의 대북정책 내지는 그 전략들의 배경 및 실패 요인 개요.
김대중(존칭 생략)은 주지한 대로 청년시절 6.25 전쟁 등의 경험으로 인하여 체질적으로 곤
산주의 찬양 코드가 있었고, 박정희 군사독재를 타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
하게 민중저항이 필요했고 그러한 반정부 투쟁을 하면서 직, 간접으로 북한 공작원들과 내
통하게 되었다는 것이 김대중의 운명이고 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중요시하는 우리의
체제엔 상극, 타도 대상이 된 인물이다.

여하튼 그가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천운이었다. 무식했던 김영삼 전직이 몰고 온 환란, 외
환위기가 "한 번 바꿔 보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크게 확산, 결국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
선되었다. 그는 1970년대 직후부터(?) 소위 남북통일은 [3단계 통일론] 로드 맵을 제시
했으나, 그것은 1989년 동서 냉전해체로 인해 사실상 폐기되었고, 그 보다 북한체제의 본질
과 그 특수한 성격을 파악하지 못해 급기야 2000년 6.15 공동선언문 까지 폐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김대중의 대북전략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즉, 노벨 평화상 수상 + 남북연방제
통일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김대중이가 1970년 전후 일본 등 지역에서 반정부 투쟁
을 할 때 김일성 자금 등 공작금을 수령할 때 북한 측에 '각서'를 써 주었다는데서 문제가
야기된다는 것.

1997년 11월 경, 대선 종반기에 당시 권영해 안기부 팀들은 김대중의 반국가 행위, 즉 간
첩행위들에 대한 7가지 사실을 국민에게 폭로할 준비를 하였다는 것. 그런데, 권영해 부장
이 김대중 당선 가능성에 김대중 죽이기를 포기함으로써 문제의 김대중 친북활동 등 체포가
능한 국가 보안법 위반사건이 수면 아래로 잠이 들었다는 것.

관련 사실은 당시 권영해 부장의 측근 중 한 사람이, 1993년 경 미국에 와서 나를 만난 우
래옥 식당에서 이 사실을 알려주어 알았다. 나는 오늘 조금 전 그러한 말을 알려 준 000
씨(그는 지금 미국 LA 근교에 거주 중)와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그 분과 가끔 전화 통화
를 한다. 오늘도 그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나의 인간미 등에 놀라 당시 나를 적극 지원하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을 했다.

어쨌든, 김대중은 자신의 통일의지와 북한의 협박에 몰려 북한에 배상 혹은 보상을 할 수
밖에 없는 김대중 대통령 시대를 맞았고, 따라서 그 명분을 '햇볕',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 포장하여 접촉을 시도했고 2000년 6.15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는 이미 체제대결이 끝난 남북한 경제력 차이였으나 북한의 노련한 대남협상 전술, 한반
도 공산화 계획에 말려 든 김대중은 한국의 유명 여배우를 김정일에게 성상납까지 했고, 정
주영 회장의 개인 우량 소 1,001 마리까지 몸보신용 상납을 하는 진풍경을 맞았던 것.

간단히 정리하면,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하여 김정일 팀을 사기쳤다는 것. 이 때문에, 북한의 유능
대남 이론전략가 김용순 비서가 정치범 수용소 수감 혹은 처형되었다. 이유는, 김대중의 정
상회담 사기술에 말려들었다는 죄책. 노태우 때도 노태우가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퍼 주었
으나 4년 후 김일성 팀이 {오케이, 정상회담을 하겠다면... 전제조건 하나 있다... 연방제 수
용이다 ! 이를 받겠다면 만나자}는 북한의 콜에 노태우 팀은 결국 몸 주고 뺨맞는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노태우는 김대중 보다는 헌법수호 의지가 강했다고 평가한다.

김대중은, [연방제]개념을 변형하여 남한의 통일안은 '느슨한 연합체", 북한은 연방제 중심
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하향 조정을 했다. 그게 그 말이고, 그게 이 말인데도 말이다.
이 수법에 북한이 속아 넘어 가 남북정상회담에 나섰다.

그러나, 김대중 임기 말이 되어도 그 놈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1단계 진입도 못했다.
이러자, 김정일이가 뿔이 났다. "늙은 여우에게 당했다"면서 김대중의 사기술에 넘어 간
실무자 김용순 비서가 벼락을 맞았다는 것.

그 후,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수상. 노벨상 상금은 북한에 입금된 것으로 추정.
그러니까, 김대중의 대북정책 추진배경은 순수한 통일일념이었으나 그것은 북한체제의 근
성, 그 체제의 본질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연방제 통일이건 낮은 단계의 연방제건 간
에)북한헌법과 남한의 헌법 자체가 상극(남한의 경우는 최종 국회에서 가부 결정을 하며,
또 연방제 통일을 할 경우, 군부 내 보수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 근본적으로 통
일이 불가한 케이스를 "통일하자"면서 내외 국민들을 흥분시킨 자체가 넌 센스. 국민과 국
력만 소모한 결과. 나쁘게 말하면 김대중은 남북한을 동시에 사기 쳤다는 것이며 4, 5년 간
퍼 준 대북자금이 핵개발 자금이 되었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까지 살
해 당하는 결산을 맞는다.

비단,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총살당한 국민, 연평 대청에서의 군사충돌, 천안함 피격 등
결과를 초래하도록 북한버릇을 더럽게 들였다는 실책.

노무현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보다는 질적-양적 면에선 모두 약화되었으나 사실상 같은 맥
락의 대북 퍼주기를 했으며, 그로 인해 북한의 개방 등 효과는 역효과, 우리 역시 그에 상
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귀싸대기만 맞았다는 것.

특히 노무현은 퇴임하면서 다음 정권도 "우리처럼 일편단심으로 대북 퍼주기를 하라"는 '지
시문'을 김정일과 김대중 3인이 짜고 '유서'를 만들었지만 오늘 사막건설 현장에서 터득한
'실용-경제성'이론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하여 그것이 용납되지 않고 용도폐기물로 전락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첨언할 것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당시 투표 전날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인한 젊은 표 무더기 투표결과가 아닌 7, 8명의 컴퓨터 전문가 청년 학생들이 투입, 여론조
작 +개표조작을 하여 노무현을 당선시킨 것이라는 점. 당시 해커 2명 이상이 대선 직후 미
국으로 도피, 5년 간 LA 외곽도시 부촌에서 가족들이 호의호식 했다. 그 증거를 미주통일
신문에서 확인, 서울에 신고했다.

오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들에 대한 실책들을 조명하면서 일단 마감하는
미주통일신문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서독 교수 송두율, 서울 동국대 교수 강정구, 한완상
통일원 장관 등 친북 장관 3명 등에 대한 검찰 공안부들이 그들에게 좀 더 강력한 실정법
위반 등으로 처벌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는 것이다.

그 같은 느슨한 처벌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혼란을 가중 시켰고, 아
직도 남남갈등 등 북한의 일관된 대남교란 작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법정
에서 보여 준 소위 이분법, 모순어법, 헤겔의 변증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행위들이 우리의
헌법체계를 농단했다.

특히 일방적인 예수 사랑으로 대북 퍼주기 식 정책을 펴기 위해선(물론 김, 노 친북의식화
가 된 자들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선적으로 처리, 전제했어야 할 과제는 당연히 1950년
6.25 불법남침에 따른 400만 명의 민족살상에 대한 사과 이상의 사과를 받아 낸 다음 햇볕
이건 포용을 했어야 했다는 것.

일본정부는 고작 10여명의 북한 억류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귀환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
한과의 만남 자체 까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정신을 새삼 인식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믛든, 노태우 정부의 소위 북방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가져 왔으나 대북 판단에서는 김대
중, 노무현과 같은 수준의 일관된 실패작을 했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동서 냉전해체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북한도 냉전해체 기대 가능성으
로 점쳤던 그 실책들이 오늘 북한의 사회개방 등을 더 더디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러한
실책이 오늘 천안함 피격 사태를 초래,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의 일관된 대
북정책 그 자체가 북한체제의 성격들을 파악 못해 우리가 뜨거운 맛을 보았던 것이다.

퍼주기, 일방적 사랑도 상대의 인성과 성격에 따라 조절해야 함에도 김, 노들은 무조건 사
랑을 준 대북정책들은 결국 북한 자체를 곤경에 빠뜨렸고, 사회개방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
는 책임을 안게 되었다. 그들에겐 최소한 박정희 식 자립 자조 정신을 심어주고 그들이 스
스로 일어 나 부강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재건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 다음, 남북한
화해 협력을 통해 인적교류를 하여 상호 방문을 통해 통일 여지를 검토했어야 했다. 그들이
북한버릇을 고약하게 만든 장본인들이었고 그 책임은 면책될 수 없다.


특히 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잊을 수 없는 개인적 슬픔 같은 게 있다. 그 중,
김대중 때 LA거주인 이안범 박사(박정희 대통령 때 정책 참모, 이후락 정보부장과 7.4 공동성명
발표자, 그 성명 작성 참여도 했고) 라는 분이 나의 언론정신, 그 철학 그리고 언론역할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이런 언론을 도와야 한다..}면서 박지원 비서실장에게 요청한 후

그것이 먹혀 들어갔다. 박지원(현재 의원)당시 비서실장은 미주통일신문을 지원하기
위하여(2003년이었나) 지원 관련 파일을 작성, 막 대통령 재가를 받으려는 시간대에
설사병이 났다. 박 비서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귀신이 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어, 비서실장 ! 거 말이여, 그 서류 가지고 와...}
박 실장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 다른 비서가 황급히 대통령이 찾는 서류를
찾아 들고(박 실장 책상 위에 있던 서류) 대통령에게 달려갔단다.

그 때 박 실장 아닌 비서가 대통령이 찾는 서류만 가져가지 않고 다른 서류뭉치 까지 들고
들어 가는 바람에 일이 터졌다. 즉, 박 실장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미주통일신문
지원재가를 받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박 실장이 화장실 간 사이에 그 비서가 들고 들어 간 서류 아래에 깔린 미주통일신문
지원 문건이 대통령 눈에 걸렸다는 것.

{아니, 이게 무시기 서륜가 ? 미주통일신문 ? 어 ? 이 놈을 ? 이 놈이 내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낳았다고 한 넘이 아녀 ? 안돼 ! 누가 이따구 짓을 했으랑가 ??? } 노발대발, 불발.

그래서, 나는 "너, 김대중 ! 두고 보자 !" 면서 이를 갈았다. 절치부심.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가능 정보 입수....] 특종 후,
다시 [김대중 노벨상 공작 청와대와 국정원에서 재벌그룹에서 자금지원 받아
노벨상 심사위원 접근, 자금살포 ...]등등 무차별 공격을 했고,

다시 [전산투개표기 조작, 노무현 당선시켰다]고 공격, 김대중의 대통령상을
파괴하는데 나섰다. 그것이 나중에 성공했던가.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다음,

노무현 대통령 시대. 또 시작한 이안범 박사가 노무현 팀의 실세에게 미주통일신문
지원 필요성을 브리핑 하자, 이게 또 먹혀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주통일신문 독자 게시판에 글이 올라 올거야... 잘 봐요...}
이안범 박사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말을 하기 하루 전 날, 게시판에 [노무현]이름으로
나를 격려 위로 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틀 동안 두 번이나.

"어 ? 노무현 ? 어느 놈이 장난을 치구나" 싶어서 글을 지웠다. 알고보니 진짜 노빠 였다.
"이럴 어쩌나 ?" 이미 글은 삭제되었고.

또 그 직후 국회의장 김원기....LA 변호사 출신 유재건 의원들이 LA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LA 민주평통 김광남 회장, 김남권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정부가 미주통일신문을 돕기로 했다...그러니 여러분들도 참고하여... 도와라}고
말했다.

이 소리에 놀란(?) 이들이 즉시 잘 난 미주통일신문 기자인 나를 코리아타운에 있는
가든 스윗트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각자 1,000 달러씩을 주는게 아닌가. 김남권 위원 왈,
{....김원기 국회의장님이 미주통일신문을 돕기로 했대. 정부가...} 관련 정보를 나에게
전해 주었다.
할레루야. "김정일은 자금을 안 보내고.. 기시끼.." 마음 속으로 농(弄)을 하며 웃었다.


"노무현 대통령, 캄싸 합니다... 혼신을 다 바쳐 대통령 각하를 지원하리다... "
정말 그렇게 독백을 했었다. 나는.

그 후, 이안범 박사는 나에게 {... 곧 서울에서 정부 관계자가 온다... 배 기자를 만나고....
그는 LA와서 배 기자를 만나고 ... 3시간 후에 곧바로 다시 서울로 간단다..}


나는 그를 기다렸다. 기다렸다. 그 때 나는 예전에 읽었던 이어령 작가의 책 중에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글을 곱씹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정부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놈의 지원금도 오지 않았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지나도....그 무렵 어느 날 이안범 박사가 맥이 탁 빠진 얼굴로
기자 앞에 나타났다.
{틀렸어... 지원이 안된다고 한다..}고. 무슨 날벼락 ? 청천벽력.


나중에 내가 그 원인을 캐 보니...국정원 안에 있는 김대중파들이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무서울 정도로. 그 때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 결재를 받으려는 순간에 김대중파들이
필사적으로 막았다는 사실들을.

그러나, 그러나 그 보다 당시 국정원장 '신건' (현재 국회의원)이라는 놈이,
미주통일신문 지원금(액수 미상)을 가로 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신 건이라는 놈이, {미주통일신문에 지원금을 전달했다.. 여기 영수증도 있다}고
상부에 보고 했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해외에 나가서
목을 걸고 반공-보수-체제수호를 하는 언론사를 돕지 않고 정부가 보내는 자금까지
가로 채 먹다니... 가짜 영수증을 만들고... 이것들이 인간이가... 체제수호를 하는 자들인가...
이건 완전 국가사기범들이다 !.."

나는 또 다시 절치부심 했다. 다시 반복하지만 그 때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청와대에
고발조치를 했다. 그러나 신건이가 받아 챙겼던 미주통일신문 자금이 도로 청와대로 반납.
죽일 놈.

그 후, 나는 1997년 봄 부터 서울에 2차례 방문 중, 우연히 안기부 부장실에 근무하는
'주 박사'(암호명 ?)라는 분을 만났다. 그는 서울에 온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꼴을 보고
{아니, 그동안 우리가 보낸 돈이 얼만데 이러고 다녀요 ? ???? 정말 자금을 받은 적 없어요 ?
한 푼도 ? 허어....}

그는 저녁 식사시간에 나를 만나 다음 날 아침 5시 경(그 날 가랑비가 내렸다)까지
식사를 2차 3차 하면서 대화를 했다.
대화의 포인트는 "배 기자가 정말 자금을 받은 적이 없었나 ? "였다.

{나, 자금을 받은 적이 한 푼도 없다니까요 !!.....} 약 9시간 마라톤 대화에서
3회 이상 "자금을 받은 적이 없어요 ? " 그는 나에게 묻고 또 물었으나 나의 답변은
"받은 적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는 {그러면 소급해서 신청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소급 ? 할까 ?.... 이 사람이 괜히 하는 소리 아냐 ? 아냐, 나를 생각하는 눈빛이
진정성이 있어... 그러나, 신청해 본 들 이 사람들이 자금을 줄 리가 있어 ?" 나는 포기했다.

또 그는, 나에게 {김대중 대통령 시대 다... 당분간 '통일신문'을 잠수하고 외환 유치작업을
해 주세요... 미국에서.. 우리가 청와대, 외통부, 재경부 자금을 대 드릴테니...}

나는 그 때 그 분의 요청을 수용했어야 했는데 나는 오로지 신문, 신문, 종이만이
애국으로 알고 "노 웨이.. 그 길은 내가 갈 곳이 아냐.... 청와대 자금,
외교통상부부 자금....? 좋지만" 나는 그 길을 포기, 접었다.

도리어 나는 경향신문 인쇄소에 가서 미주통일신문 서울판 신문 7만 부를 인쇄,
정부 주요 기관 및 언론사에 뿌렸다. 1997년 4월이었나. 그 때 나의 신문 1면
탑 뉴스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요망]한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그러니까, 반북파 미주통일신문 기자가 노태우 정부 이하 모든 정부가 대북 포용 화해협력정책을
입안, 추진을 하는데 미주통일신문 기자 놈은 기어이 이에 불응, 반북 언론을 하자
나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고 요시찰 인물로 이미 각인, 낙인 찍혔던 것. 하긴....
김대중 때도 그랬으니. 어떤 괘씸죄도 추가.


어쨌든 나는 그 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이 놈들이 끝까지 나를 죽이네..
한 번 해 볼까 ? ..."면서 타킷을 설정했다. 무기는 사이버 공격 - .

작전개시. 1차 국정원, 2차 ? 애매했다. 그래도 고마운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가. 혼란이 왔다.

그러나, 그 때 부터 국정원 등을 공격하다보니 자연스레 노무현 대통령 까지 확대된다.
"이러면 내가 의리가 ...." 또 고민했으나 "국정원 놈들이 그렇게 해도 대통령이
나를 좋아했다면 대통령 특권으로 사인을 할 수 있었지 않아 ? "
나는 아전인수격 자의적인 해석을 했다.

김대중 공격, 노무현 정부공격은 시작, 이미 걷잡을 없는 극한상황, "니 놈들이 애국하겠다는
언론사에 지원을 못해 ? 니 놈들은 수 천억을 해 먹고... 과자 값도 안되는 자금을 못 도와 ?
미주통일신문이 그 돈을 받으면 먹고 라스베가스로 튄데 ? 개새끼 보다 못한 놈들...
니들만 애국자 냐 ? 이 사기꾼들... 무식한 놈들이 대통령이라고... 죽어봐라 !"면서 연일 공격,
인터넷 독자들이 하루 4천 명, 6천명 이상이 본 사이트를 검색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가장 치명적인 성과는 [김대중 노벨 평화상은 금품살포 매수...
노무현은 전산 투개표기를 조작 당선된 대통령... 전산 투개표기는 김대중 지시로 ...] 폭로,
이로 인해 그들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미지가 파괴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들도 나중에 미주통일신문의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받다"는 정보들을 입수했다.
다음에 관련 스토리를 다시 쓴다. 지금은 정신이 없다. 빚쟁이들 때문에.



여기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지난 2003년 11월 부터 내가 공중파 TV ch 18...
위성 TV, 로칼 TV채널 등 3개 채널을 통해 매주 1시간 방송을 했다.
전파비와 제작비만 매회 6천 달러 이상 투입.

위성 TV뉴스는 중남미 지역, 캐나다 등등 지역에서 현지 교민들이 시청한다고 난리법석이었다고.
일요일 밤만 되면. 그 때 국정원 해외 팀들도 "미주통일신문 때문에 정부가..
대통령이 ..." 개망신을 당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방송자금은 성경에 일가견이 있는 [이 숙]이라는 서울 20위 내 재벌급 회사 대표 미망인.
그 녀는 일본 동경여자대학교 출신, 미국 샌디에고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
또 그 녀는 오래 전에 서울 방송국에서 집필도 했고 충남대학교 총장을 했던 이00 박사의 딸.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재혼, 현재 일본 조총련 보스 방위산업체 재벌 부인.

이 미망인이 미주통일신문 방송이 좋다고 투자를 했고, 나중엔 부동산 투자유치를 하면서
떡고물을 만졌다. 그로 인해 현재까지 그 빚이 늘어 나 30만 달러. 그 빚 때문에 집이
은행에 넘어갔고 또... 스트레스를 받아 고혈압, 당뇨까지 겹쳐 합병증을 앓고 병원
긴급호송을 3회 했다고 한다.

방송을 할 때 일본에 있는 노모가 {방송 테이프를 나에게 보내라...}하여 이 숙 씨가
미주통일신문 TV 테이프를 몇 개를 일본에 보냈다. 그것을 받은 어머니가 한국말을 못한다.
비서를 시켜 한국말로 번역, 들어보니 북한을 까는 방송에 기절.

그것도 조총련 두목 부인인 그 녀의 어머니 왈, {이 년 ! 너 미쳤어 ? 김정일 위원장을
욕하는 방송을 해 ? 돈을 보내 달라고 ? 미쳤어 ? 돈이 썪어도 못 보내 !!! ....
나와 인연을 끊어 ! 전화도 하지 마 ! } 잘 난 미주통일신문 기자 때문에,
그녀는 어머니와 자식들과 인연이 단절. 2004년 봄 부터 오늘까지.

더욱이 그 때 서울에 있는 시댁에서도 (건설 회사라던데) 국정원 놈들이 들이닥쳐
{너 며느리가 미국서 반정부 방송을 한다, 죽고 싶나 ? 세무감사 한다 !...}면서 협박,
결국 15억원 정도 돈을 갈취 당했다. 이 사실은 그 회사에 근무하는 아들 딸이
어머니 이숙 씨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때문에 여기 회사가 망하겠다...세무조사를
한다면서... 돈 10억원 이상을 뜯겼다 !... 엄마, 그 배 기자라는 놈과 같이 방송하면
여기 전화도 하지 마 ! 우리와 인연을 끊자 !}면서 통화불통 시작. 오늘까지.

또 하나 비하인드 스토리.


그 녀의 아버지 충남대학교 총장 출신 이 00. '이 숙'씨는 그의 아버지와는
자주 전화를 했다고. 그 때 마다 그 녀의 아버지는 {방송이 좋다... }면서 칭찬.
{배부전 기자라는 놈은 누구 니 ?...} 묻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 녀는 {그 사람은 돈도 모르고 글 쓰는 것 밖에 몰라요...}

이 때 국정원 놈들은 이들 부녀의 전화 통화를 감청.
결국 국정원 놈들이 '이 숙' 씨의 아버지에게 찾아 가 위협, 협박 시작.

{전화할 때 말조심 해라... 여기는 상황이 안 좋다... }딸에게 알렸다고.
즉, 정보요원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겁을 준다는 것. 그녀의 아버지는 그 때 병석에 있었다.

그 때 이숙 씨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와 {정보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찾아 와...
괴롭히는가봐요.... 아버지의 병세가 더 악화된 것 같아요...
나, 방송을 못할 것 같아요..}통보.



그 후, 2년 만인가... 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 재산 40억 부동산 중에서... 5억원은 배부전 기자에게 준다...}고 변호사에게 유언들을 남겼다.

이 때, '이 숙'씨가 나를 불러 만났더니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그러나 나는
아버님 장례식에 못가요... 고소를 당해서.. (그 고소는 그 녀가 방송에서 정몽헌 자살이
아닌 타살로 규정, 정몽헌 부인에게 "남편의 죽음을 밝히라" 는 등등 말했다가 정부당국으로
부터 고소를 당한 것. 배부전 기자도 김대중-경찰청으로 부터 고소를 당했으니)....
아버님이 배 기자님에게 주라고 5억원 유산을 남겼어요. 변호사가 연락이 올테니...
그 돈으로 방송을 잘 해 보세요. 그 돈이면 1년은 방송할 수 있지 않아요 ...}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감격, (기자에겐 귀신이 붙었다는 것을 잊고) 인터넷 뉴스판에
[충남대학교 총장을 하셨던 이 00 님이... 미주통일신문에 유산 중 5억원을 기부..]
라는 기사를 올렸더니...

이를 실시간 검색하던 당시 국정원 팀에서 이00 총장 집으로 달려갔다.
그 유산은 대주택 40억원 짜리를 팔아 자녀들에게도 분배하라고 했는데....
{미주통일신문에 자금을 보내면....}죽을 줄 알라고 그 유족들에게 협박했고... 국정원 놈들이.

다시 그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에게도 찾아 가 {너, 죽을래 ?
그 집을 산 자금이 어디서 나온거야 ? 세무조사를 받아라 !}고
국정원놈들이 계속 협박을 하는 바람에 매입자가 부동산 매매계약을 취소,
자금동결. 미주통일신문 자금 5억원 무위로 돌아갔다. 이 죽일 놈들 .....


지금은 이00 총장이 살던 집이 공원이 되었다던가. 하도 큰 저택이라서...
반북-보수 언론을 하는 미주통일신문이 북한도 아닌 남조선 놈들에게 당한
이 같은 사실들, 하늘도 놀랄 것이다. 북한은 쾌재를 부릴 것이고.


1982년 여름, 미주통일신문은 정부가 첫 지원하는 자금을 받지 않는다고 거절했다가
실책을 범한 후, 노태우 정부 때 부터 북한과 통모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왕따를 당했다.

광고 받기는 어렵고... 거지 꼴, 하숙집 전전... 돈 좀 있는 과부들은 찾아오고...
팔로스버더스, 베벌리 힐에 사는 서울 00 보험회사 등등 재벌 부인들 까지
(물론 이혼 당한 것들)이 기자와 살자고 나를 유혹했고... 관계했고...마음에 든
여자는 잡히지 않고.


그 와중에 빚쟁이들은 늘었고.. 빚만 총 100만 달러 육박. 사기꾼 소리까지 듣고...
권총 위협, 살해 위협을 수 차례 경험했고, 자동차 까지 2회 테러를 당해 자동차를
살 돈이 없어서 걸어 다니고.... 또 불법택시...버스를 타고 다니고....
미친 놈 소리를 듣고. 2010년 오늘까지 반복, 연장선상에 있으니.


미주통일신문 ? 너 잘 났다. 왜 사니 ?


신냉전의 후유증, 통일하자고 ?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 보다 그들이 더 웃기는 넘들이었다.
그들은 황당한 놈들이다.

(다음에 또 쓴다. 생략한다)



---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원칙정책이 가장 우수한 '작품' ---
/////////////////////////////////////////////////////////////////////////////////////


EPELOGUE. 에필로그. 결론부터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이 가장 우수하다는것. 북한의 진실성, 그 진정성이 없는 대화는 무용지물이라는 판단에 따
른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대남당근을 요구하는 원칙정책, 엄격한 상호주의에 의한 거래요구
가 역시 '원칙'이며 이로 인해 북한은 앉아서 받아먹던 체제유지 및 핵개발비용이 바닥을
치자, 긴장 대남협박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전략이 북한을 코너로 몰아 위기를 조장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자생력을 키우며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자유시장 경제 등으로 전환할 수 있어 이러한 전략을 계속 추진
하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북한의 도발 등이 우려되나 미국의 남한방위 공약이 확고한 이상, 북한은 도발하
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주통일신문의 자체 판단이다.

아ㅁ-ㅎ든,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 제안이 역대 대통령들의 대북접근 방식 및 가
치 보다 수천 배 높다는 점을 북한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의 핵을 포기할 경우, 이
명박 정부도 외국과 협력하여 북한에 400억 달러 이상을 퍼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추가 지
원도 있다고 천명했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재검토
하여야 한다.

북한의 변화, 대남당근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북 퍼주기는 중단되는 것이 마땅하며, 이산가
족 문제가 가슴 아픈 일이긴 하나 북한이 이산가족을 인질화, 달러 캐기를 하기 때문에 21
세기 초반에는 이 같은 민족분단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땅굴사실을 확인, 국민에게 보고하고 북한은 연방제 통일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그것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 말이다), 북한의 위협에는 동요하지 말고 한미동
맹을 통해 북한 군사모험을 종식시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부연하면 국내 좌파세력들에 대한 제거, 대응전략을 세워야 하며 친북세력들의 불법 평양
행을 막고 메이저 언론과 공안부 검사들을 양성하고, 대북정책은 지금과 같이 원칙을 전제
로 김정일과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약하면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고, 반면
우리가 강하면 북한이 얌전해 진다는 사실을 참고하여야 한다. 북한은 결코 대남 전면전을
하지 못한다. 김대중, 노무현이가 그 북한버릇을 더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이명박 대통
령이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상생-공영], 이상의 좋은 대북정책일 수 없다. 앞으로도 기대할 것 없는 마지막 대
안이다.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냉전해체, 우회로를 통한 북한접근이 성공하는 것으로
착각,
{금세기 안에 통일이 된다}고 천명. 이 때 미주통일신문은 미국에서 "기가 찬다... 미쳤군...
통일같은 소리하네"라고 빈정거리고 있었다.

이는 곧 북한의 체제관리자들의 수준이 낮아 이 같은 우리들의 포용 상생 공존의 대북정책의 진미를
파악 못해 혼란을 가져 온 것이다. 특히 김일성 그 체제들은 사회개방을 하면 체제붕괴로 인식하기
때문에 중국식 베트남 식 사회개방도 하지 못한다는 것.

그 체제는 소위 소프트 랜딩 전략에 따라 안전하게 국제무대에 나와야 하는데, 그들은 이를 거부,
내부 혼란이 가중될 경우 결국 내부 군사 쿠데타 등으로 체제가 쓰러질 것으로 2010년 7월 31일
미주통일신문이 일단 분석 중이다. 그것은 곧 하늘의 명령이다.

미국은 소위 "그림자 정부"(shadow Gov.,)가 백아관 뒤에서 주요 대내외
정책을 지휘한다는 말이 있으나 우리 정부는 대통령 측근과 일부 교수들이 중심에서 움직이
고 있을 뿐 특별한 정권관리 비상대책반이 없다는 것이 허점이다.

북한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국정의 키를 돌려야 한다. 주민 통제용 "식량난 조작"도 중
단하고 말로만 고깃 국, 비단 옷, 이밥 먹이기 말을 하면 안된다. 김정일 자신이 변할 때 북
한은 위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남북한 연방제 통일안도 즉
시 폐기하고 허세, 오만의 성격을 교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박정희 식 북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 이제 우리는 이념의 잣대가 아닌 실용의 잣대로 북한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제안들이 곧 한반도 평화통일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첩경이며, 한반
도 냉전해체를 가져오고 오늘 같은 그 후유증도 불식될 것이다.


이상.

위 같은 글은, 지난 30년 간 분단 한반도와 미국에서 확인했던 필자의 100% 사실
증언이다.

2010년 7월 21일

(원고 끝. 다음에... 배부전 기자의 수기를 완성할 때 더 많은 소재들을 첨가 하겠습
니다. 지금은 글을 쓸 정신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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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속 보 ㅡ 오늘 LA 한인회관 관리재단 재판결과 1신. 발행인 2017.04.18 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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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LA 한인회관 관리재단 검찰조사... 급 피치 발행인 2017.04.12 5406
공지 Oh, my god, China !!!!!!!! file 발행인 2017.04.12 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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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오늘 보궐선거, 한인 몰표 안후보 당선 될 수 있어. file 발행인 2017.04.04 5928
공지 코리아타운 ㅡ, 참 이상한 현상. 하나 발행인 2017.03.29 7239
공지 속 보 ㅡ LA서 힐러리.,오바마 정부 위해 활동하던 이홍범 박사 ....금요일 사망. file 발행인 2017.03.26 7572
공지 LA 동양선교 교회에... 이상한 일이 ? 발행인 2017.03.24 7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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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드배치" 중단하고.... "북한 핵 폐기" 하자는 빅딜 하라 ! file 발행인 2017.03.13 8359
공지 TO : LA. FBI....PLEASE ! file 발행인 2017.03.11 8029
공지 TO :David E. Ryu. LA COUNCIL DISTRICT4. You should not tell the illegal ... file 발행인 2017.03.10 8412
공지 25시간을 뛰는 LA 올림픽 경찰서장 file 발행인 2017.03.07 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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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자의 창 ㅡ 밤길에 찬바람이 기자의 얼굴에 스치니.... file 발행인 2017.01.26 9211
공지 LA 긴급속보 ㅡ 한인회관 건물관리 재단 연방검찰에서 조사 착수.. 관련자들 2월8일 연방검찰 출두명령 발행인 2017.01.25 8900
공지 우주명상학자 미나스 카파토스 박사(Dr. Menas C. Kafatos)의 한국어판 명상집 ...강연회 금요일 ㅡ 발행인 2017.01.23 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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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오바마, 굿바이. 다음엔 대통령 하지 말라. 당신들은 안돼. Obama, not the next president. You are not allowed. file 발행인 2017.01.20 9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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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LA 코리아타운 ㅡ 아씨마켓 부지에 고층빌딩 계획 실패... 공청회 3회 모두 거부 당해 발행인 2017.01.14 9456
공지 LA. 소방국 뉴스 ㅡ 발행인 2017.01.11 9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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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사람을 찾습니다. 손창문 군출신...., 미국에 거주 한다고 발행인 2017.01.06 9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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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USA, 한국이 사드 배치 반대하면 주한마군 철수시켜라 발행인 2017.01.04 9730
공지 ICBM card in the trump card Kim Jung Eun ... notice of the Korean penalty... 발행인 2017.01.01 9732
공지 LAPD 경찰 뉴스 ... 오늘 10시.. 발행인 2016.12.30 1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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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LA News ..... RTNA 발행인 2016.12.27 1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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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LA 한인회 뉴스 ㅡ. 건물 세금 17만 달러. 누가 그 세금을 낼 것인가 ? file 발행인 2016.12.26 9468
공지 L A 한인회관 건물관리 재단, 1월 중에 재판중단 합의 하라... 만약 불응 땐 미주통일신문이 액션을 취한다 file 발행인 2016.12.24 10004
공지 LA 민주평통 회장 임태랑 오늘 서울서 훈장 받아 file 발행인 2016.12.22 1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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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명박 전 대통령 LA서 연설 ㅡ file 발행인 2016.12.14 9692
공지 내일 LA 이북 5도민회 2017년 회장 선거 file 발행인 2016.12.14 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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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자의 단상> 기자가 돈을 받아 먹으니..... 발행인 2016.09.23 12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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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힐러리, 안되구나...... 그것도 미국건국의 혼들이 작동 했나 ?? 발행인 2016.09.11 1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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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LA 소방국 뉴스 발행인 2016.09.08 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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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자의 메모장> LA 가짜같은 노련한 목사 2놈에게 기자가 당한 스토리 발행인 2016.09.04 14022
공지 @@@@ LA 시장에게... 발행인 2016.08.31 13017
공지 긴급 ㅡ LA 시장 님 !! 발행인 2016.08.28 13544
공지 [핵폐기 1천만영 서명운동] 기자회견 때....ㅎㅎㅎㅎ file 발행인 2016.08.28 1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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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이런 일이 어떻게 ........ 김대중 노무현..그 후.. 박근혜 정부 까지 모두 직일 놈들이네 발행인 2016.08.27 13763
공지 오늘, LA를 공략하는 30년전 중국에서 창립한 Longrich 회사.....미국 지사장 에릭 장. 전화 626. 347. 9440) 발행인 2016.06.04 17183
공지 이 노래가 왜 이리 좋노...... 발행인 2016.05.29 16874
공지 Trump News .... good 발행인 2016.05.24 17307
공지 @@@ 장 기자... 2만개만 쏘아 발행인 2016.05.11 15688
공지 미국 국무부도..... 미주통일신문 말을 듣네....ㅎ 발행인 2016.05.11 16802
공지 # 무서운 LA코리아타운, 지금 5건의 '사건'이 진행 중 ! 발행인 2016.05.04 1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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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미국 LA 장의사 중에서... <엘에이 장의사>가 가장 비용 저렴 file 발행인 2014.12.17 53176
공지 12월 17일 까지 배부전 기자의 TV뉴스 쇼 (정윤회 문건유출은 좌파들이 공작 ? ~ 남북한 문제, 1민족 2국가 Two KOREA 고착 준비하라 ! ) 발행인 2014.12.09 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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