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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무장반군

당시 반군측 지휘부가 광주시민연합측에 북괴가 쓰는 용어인 해방구 선언과 노동자 해방. 조국해방통일 등의 구호 등과 좌익사상교육을 하자, 시민대표측이 거부감 표시와 태극기 등장과 무기반납운동을 전개하면서 전투력을 구축으로 한 반군 지휘부와 반목하면서 광주무장반군세력은 급격하게 줄어 들고 외부로 진출하려는 반군들이 계엄군인 특전사들에게 족족 사살을 당하여 전투인력들이 줄어 들자, 인원충원을 위한 교도소습격을 강행하여 북괴의 지령을 따르는 고정간첩과 지하당원과 밀파된 북괴 특수군들 태반이 사살 당하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잠적과 도주를 하게 되면서 광주5.18은 무장반군운동은 실패로 끝나게 되고 동원된 고첩들과 지하당원들의 절반이 사살되고 밀파된 공작군의 절반 가까이 사살 당하게 된 것이 사태 후에 흘려나온 이야기다.

사망자 비공식 2,000여명 중에 북괴공작군 400명 시민150명 고정간첩 지하당원 1,400여명이 사살로 추정된다.

그래서 국회청문회에서 까지 사망자 2,000명론으로 쟁론이 있었다.

최규하 대통령과 신군부의 탁월한 충정작전이 없었다면 희생자는 수만명으로 확대 되었을 것이다.

 

민중 기폭제용으로 투옥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정보국에 스스로 내란계획서로 밀고시킨 내란총책 김대중 등은 내란행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멍청한 미국측의 요구로 석방하여 미국에 보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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